본문 바로가기
  • 어제는 비
문학 참고서재

그 말이 언제 그렇게 달라졌나요

by 솔 체 2017. 12. 13.

그 말이 언제 그렇게 달라졌나요

 


   강 인 한

 

 

 


   흔히 자기가 알고 있는 잘못 된 국어 표현을 지적해 주면 그게 언제 그렇게 달라졌느냐고 사람들은 정색을 한다. 이 글의 제목은 “그 말이 언제 그렇게 달라졌나요”이다. “그 말이 언제 그렇게 달라졌나요?”가 아니다. 표제어가 한 개의 문장으로 된 경우에는 마침표나 물음표 혹은 느낌표를 붙이지 않는다는 표기 원칙이 그렇다. “압록강은 흐른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라는 제목이 맞지 “압록강은 흐른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가 아니다. 까짓 원칙이 뭐 밥 먹여주느냐고 배짱 좋게 “요즘 우울하십니까?”라고 제목을 붙인 책도 요즘 본 것 같다. 출판사의 편집자들이 무식한 것을 전혀 반성하지 않을 정도로 참 많이 뻔뻔해졌다.

 

   ‘잔듸’가 아니라 ‘잔디’라고 한다는 건 웬만큼 알고 있을 것이나 ‘금세’가 맞고 ‘금새’가 틀리다 하면 더러는 어리둥절하며 이상한 눈치다. 〇공표, ☓가새표를 ‘오, 엑스’라고 하는 건 세상 흐름이 그렇구나 탄식할 일이겠지만 가새표를 하도 가위표라 우기며 틀리는 이가 많아지자 넌지시 가위표도 표준말에 끼워 넣어준 다수결의 민주주의가 우스울 때도 있다.

   하긴 내로라하는 젊은 시인들조차 ‘디디다’와 ‘딛다’가 다른 말인 양 착각을 물 집어먹듯 한다. ‘디디다’가 줄면 ‘딛다’로 되는 것인데 ‘디디고’를 줄여 ‘딛고’로 쓰면서도 ‘디딘’은 굳이 ‘딛은’으로 쓰려고 풋바심하는 어색한 꼴을 많이 본다. 하기야 ‘남빛’을 ‘곤색’이라고 태연히 쓰는 걸 유명 출판사의 시집에서도 볼 수 있는 일이었으니 기가 막힐 뿐. 그 출판사의 책들은 외래어 표기를 끝끝내 자기네 식으로만 표기하는 고집불통의 전통이 있는데 ‘카페’를 ‘까페’로, ‘실크’를 ‘씰크’로만 표기하는 국어사전의 외래어 표기 원칙 따위는 나 몰라라 함에 이르러서는 아연할 따름이다.

 

   한자말 ‘표지(標識)’를 제대로 알고 있는 이도 흔치 않다. 옛날 소설책의 작가 서문을 보면 끝에다가 으레 ‘著者識(저자지: 지은이가 적다)’라 쓴 걸 볼 때마다 속으로 많이 웃었던 기억이 난다. ‘識’은 "알다, 지식, 식견”이라는 뜻으로 쓸 때는 ‘식’이지만 “적다, 기록하다(記錄--), 표시하다”라는 뜻으로 쓸 때엔 ‘지’로 읽는 한자다. 지식(知識), 표지(標識: 표시나 특징으로 다른 것과 구분함. ‘표식’으로 흔히 틀리기 쉽다.)에서처럼. 도로 표지판이 맞지 도로 표식판은 아니다. 표시나 특징을 나타내는 ‘표지’라는 말을 ‘표식’으로 잘못 사용하는 시인들은 의외로 많아서 50대 이전의 시인들 가운데 줄잡아 팔할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좀 귀찮을지라도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쉽게 알 수 있음에도 그런 일을 귀찮게 생각하는 버릇 때문에 명색 시인들이 곧잘 웃음거리가 될 만한 표기를 범하고서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예전에는 출판에 종사하는 이들이 교정을 보고 바로잡아줬지만, 요즘은 필자가 메일로 보낸 원고가 발표지면에 그대로 전송되어 실리게 되므로 오, 탈자의 책임은 필자 본인에게 있음이 당연하지 않은가 말이다.

   내친 김에 최근에 읽은 글 중에서 이런 글을 하나 소개한다. 이 글의 필자는 196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빗속에 연기 속에」라는 시로 당선한 시인이며 『우리말 지르잡기』『작가들이 결딴낸 우리말』등의 저서가 있다.

 

 

 


   오랜 고민 끝에 이제 우리 시를 한번 되작거려보기로 했다. 꼭 저질러 보고 싶었던 작업이기도 하다. 이미 읽고 정리해두었던 것 말고 수백 권의 시집을 더 읽어냈다. 그 결과가 앞으로 재미나게 밝혀질 테지만, 한마디로 우리 시 역시 초미에 가오리탕이었다.

 


      열무를 심어놓고 게을러

      뿌리를 놓치고 줄기를 놓치고

      가까스로 꽃을 얻었다 공중에

      흰 열무꽃이 파다하다

      채소밭에 꽃밭을 가꾸었느냐

      사람들은 묻고 나는 망설이는데

      그 문답 끝에 나비 하나가

      나비가 데려온 또 하나의 나비가

      흰 열무꽃잎 같은 나비 떼가

      흰 열무꽃에 내려앉는 것이었다

                               —문태준, 「극빈」부분

 


      기차 소리 젖은 강물 위로 어머니 그림자 내 그림자

      하얀 열무꽃처럼 떠올라 둥둥 떠올라

      꽃가루 흐르는 오월의 강물 위로

                              —신현림, 「하얀 열무꽃처럼」부분

 





   위의 두 예문에 나오는 ‘열무꽃’을 보고 간이 떨어질 뻔했다. 열무가 꽃이 피다니! 너무나 뜻밖이었다. 결론부터 말해서 열무는 꽃이 피지 않는다. 아니 필 수가 없다. 만에 하나 열무가 꽃이 피었다면 그것은 손가락에 장을 지질 일이다.

   이런 사태는 ‘열무’를 무의 한 종류로 알고 있는 데서 비롯된다. 열무는 단순히 ‘어린 무’일 뿐이다. 어린 무가 어찌 꽃이 피겠는가? 만약 꽃이 피었다면 그것은 이미 ‘어린 무’가 아닐 것이다.

   「극빈」의 경우, 실제의 꽃이 아니라 시적 형상화일 뿐이라고 우길지 모르나 그도 석연치 않다. ‘무씨를 심어놓고’나 ‘무 모종을 심어놓고’가 아니라 ‘열무를 심어놓고’라고 했기 때문이다(그것은 곧 ‘열무’라는 종류의 무를 심었다는 의미인 까닭이다). 실은 열무를 ‘심었다’는 말 자체가 이해하기 어렵다. 요즘 들어 가을철에 김장용으로 더러 무 모종을 팔고는 있으나 거개는 무씨를 심어 가꾼다. 설사 싹을 틔운 무를 심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무 모종일 뿐 ‘열무’라고 할 수는 없다.

   꽃이 피는 무는 ‘장다리무’뿐이다. ‘씨를 받기 위하여 장다리꽃이 피게 가꾼 무’가 ‘장다리무’이다. 씨를 받고 나면 그 무나 줄기와 잎은 소 떡심처럼 질기게 쇠서 소여물에나 넣어주는 게 보통이다. ‘장다리꽃’은 배추나 무의 장다리(무, 배추 따위의 꽃줄기)에서 피는 꽃으로 마치 유채꽃처럼 샛노랗다.

                           —권오운, 「우리말 더듬거리는 우리 시들」에서, 《시인수첩》2011년 여름호

 

 

 

   그렇구나, 무 장다리꽃이 노랗게 피는 건데 시에서는 흰 꽃이라고 했으니. 돌연변이 종의 '열무꽃'일까 보다. 「메밀꽃 필 무렵」에서 주인공 허생원이 왼손잡이라고, 그래서 동이가 왼손잡이였다는 새삼스런 발견이 심봉사 눈뜨듯 기막힌 반전이라 생각했건만 왼손잡이가 유전이 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에 얼마나 허망했던가. 그래도 명작의 아름다움에 크게 손색은 없었다는 느낌이었다. 

   그래, 저 시 또한 그렇게 느껴볼까.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