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曠野)에 와서
유치환
흥안령(興安嶺) 가까운 북변(北邊)의
이 광막(曠漠)한 벌판 끝에 와서
죽어도 뉘우치지 않으려는 마음 위에
오늘은 이레째 암수(暗愁)의 비 내리고
내 망나니에 본받아
화툿장을 뒤치고
담배를 눌러 꺼도
마음은 속으로 끝없이 울리노니
아아 이는 다시 나를 과실(過失)함이러뇨
이미 온갖 것을 저버리고
사람도 나도 접어 주지 않으려는 이 자학(自虐)의 길에
내 열 번 패망(敗亡)의 인생을 버려도 좋으련만
아아 이 회오(悔悟)의 앓음을 어디메 호읍(號泣)할 곳 없어
말없이 자리를 일어나와 문을 열고 서면
나의 탈주(脫走)할 사념(思念)의 하늘도 보이지 않고
정거장(停車場)도 이백 리(二百里) 밖
암담한 진창에 갇힌 철벽(鐵壁) 같은 절망(絶望)의 광야(曠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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