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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참고서재

강인한의 「사랑의 기쁨」을 읽고 / 복효근

by 솔 체 2014. 10. 10.

강인한의 「사랑의 기쁨」을 읽고 / 복효근


사랑의 기쁨 *

강인한



목이 마르다고 했다
너는 몹시 두려워하며 물을 움켜쥐었다
저 언덕 너머 뒤쫓아오는 추격자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린 것 같다
고 너는 말했다

나는 네 손바닥 위에 한 움큼의 물을 보태었다
떨리는 너의 손가락 사이로
물은 금방 새나가는 것이었다
모래언덕 위로 회오리바람이 일었다

한 모금을 겨우 목구멍으로 넘기는 너를
바라보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번개같이
내려진 기요틴의 칼날 아래
눈뜬 채 웃고 있는 내 머리가 뒹굴었다

내 눈에 맺힌
물방울 하나에 너의 모습이 비쳤다.


――――
* 사랑의 기쁨 : 마르티니 작곡의 음악.

―《서정과 상상》2007, 가을. 창간호


오래 전에 보았던 영화 한 편이 겹쳐진다. 스웨덴 출신 감독 보 비더버그의 〈엘비라 마디간〉이다. 귀족 출신의 젊은 장교 식스틴과 서커스단에서 줄 타는 엘비라 마디간. 전쟁에 대한 혐오감과 삶의 무상함에 빠진 젊은 장교는 아내와 두 아이를 버린 채 탈영하고, 엘비라도 남편과 미모와 서커스로 얻은 명성을 버리고 식스틴과 도주한다. 그러나 엘비라의 남편은 집요하게 추적해오고 한 끼니조차도 더 이어가기 어려운 지경에서 결국 최후를 결심한다. 식스틴이 권총으로 먼저 여자를 쏘고 자신도 관자놀이에 방아쇠를 당긴다. 그들이 최후를 맞이하는 그 동산에 들꽃이 만발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더구나 이 영화엔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1번 다장조」가 삽입되어 그 비장미를 더해주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앞에 한 편의 시는 〈엘비라 마디간〉과 비슷한 서사적인 구조를 가지고 전개된다. 사랑에 빠진 두 남녀였으리라. 그들은 도주한다. 물론 추적자가 바짝 뒤따른다. 얼마나 쉬지 않고 달려왔던가. 영화에서 낱낱이 보여주었던 도주의 이유와 과정을 시에서는 독자의 상상의 몫으로 남긴다. 그러나 독자의 머릿속엔 영화에서보다 더 풍요로운 상상이 펼쳐진다. 그게 시가 지닌 묘미인지도 모른다. 영화에선 남녀의 사랑을 묘사하는데 배우의 빼어난 외모와 뛰어난 영상미와 배경 그리고 아름다운 음악이 동원되었다면 이 시에서는 일체의 장식은 없다. 그러면서도 같이 목이 마를 텐데도 시적 화자가 '너'에게 물을 건네는 장면에서 우리는 사랑의 본질을 읽는데 하나도 부족함을 느끼지 못한다. 그리고 그 죄로 기요틴에 목이 잘리면서도 '너'의 목구멍에 물이 한 모금 넘어가는 것을 기쁘게 바라보며 몸통이 잘려나간 시적 화자의 머리는 웃고 있다. 그게 '사랑의 기쁨'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영화처럼 음악을 삽입시키지는 못했지만 마르티니의 음악을 제목으로 삼아 독자의 머릿속에 배경음악을 깔아준다. 이루지 못할 바에 같이 죽는 비극도 아름답지만 마지막까지 너를 위해 기꺼이 나를 죽이는 사랑은 더 기쁘고 아름다울 것 같다.
시인의 군더더기 없는 선비의 풍채와도 같이 군살 없는 몇 줄 언어로 긴 영화만큼, 아니 그보다 울림이 큰 목소리로 사랑의 본질을 묘파해 내는 그 저력에 고개가 숙여질 따름이다.

―《시와 상상》2007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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