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민복 시집 <말랑말랑한 힘>을 읽고/강인한
함민복은 강화도에서 혼자 사는 가난한 노총각 시인이다. 그의 시 '긍정적인 밥'을 보면 그가 참 따뜻하고 밝은 사람이라는 걸 금방 느낄 수 있다.
시 한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긍정적인 밥」 전문
물질적인 가치에 비하면 사실 정신적인 가치는 우리 사는 세상에서 얼마나 헐하고 무시당하기 쉬운 것인지. 그래서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쉽게 상처받는 게 일반적인데 함민복은 그것을 상처로 생각지 않고 따뜻한 가슴으로 대할 줄 아는 밝은 시인이다. 시인은 시집 한 권의 가격이 든 공에 비해 헐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을 탓하지 않는다. 밥주걱으로 뺨을 때리는 형수에게 다른 쪽 뺨을 내미는 흥부같이 너무나도 소박해서 어쩌면 우직하게까지 보이기도 한다.
그가 최근에 또 한 권의 시집을 냈다. 『말랑말랑한 힘』이라는 시집이다. 뻘흙의 말랑말랑한 힘을 그는 금속문명의 폭력에 대비시켜 유연한 생명력과 대지적 모성을 거기서 유추해 내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재작년에 어느 양조회사에서 새 상품으로 낸 매실주의 포스터에 쓸 시 한 편을 시인협회에 부탁하였다. 파격적으로 많은 고료를 책정해서 매실주에 어울리는 광고용의 시를 부탁한 거였다. 당시 시인협회 회장 이근배 시인은 대뜸 함민복 시인에게 그것을 맡겨줬다. 그는 누가 뭐래도 가장 가난한 시인이기에 누구도 반대하는 이가 없었다. 언제부턴가 직업을 가지지 않고 오로지 글만 쓰는 일로 먹고살기를 작정한 전업작가라는 직종이 새로 생겼다. 산문이야 그럴 만하다고 생각되지만 시인이 그렇게 나서는 걸 나는 좀 위험하지 않은가 생각해 왔다. 오늘 같은 자본주의 세상에서 시를 쓰다 굶어죽어 시에 순교하기로 작정한다면 모를까 한참 어처구니없는 게 전업시인이라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 없다. 전업시인을 내세우고 상업적인 산문으로 독자를 홀리려는 심산이 엿보이는 게 나는 싫었다. 그럴지라도 함민복 시인을 생각하면 대책 없는 그의 순정 같은 게 느껴진다.
당신 그리는 마음 그림자
아무 곳에나 내릴 수 없어
눈 위에 피었습니다
꽃 피라고
마음 흔들어 주었으니
당신인가요
흔들리는
마음마저 보여주었으니
사랑인가요
보세요
제 향기도 당신 닮아
둥그렇게 휘었습니다
그가 쓴 「설중매(雪中梅)」라는 포스터용 시이다. 상업적으로 주문 생산된 시이건만 참 은은하고 아름다운 시이다. 눈 속에 향기를 풍기며 환하게 핀 매화와 둥근 달이 한 폭의 운치 있는 한국화를 떠올리게 한다. 이것을 읽은 시인들이 누보다도 이 시를 좋아라 했다는 신문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번 시집에는 「달과 설중매」라는 제목으로 이 시가 들어 있다.
바닷가의 생활과 연관지어 쓴 상당히 많은 시들은 나름대로 그의 깊은 사유의 결과를 보이려는 노력 같다. 그러나 나는 그 자신이 알고 있는지 모르지만 건강하고 유쾌한 비판정신과 해학이 어우러진 그의 시들을 더 높게 산다. 아래에 보이는 시들이 바로 그러한 시들이다.
<김포평야>
김포평야에 아파트들이 잘 자라고 있다
논과 밭을 일군다는 일은
가능한 한 땅에 수평을 잡는 일
바다에서의 삶은 말 그대로 수평에서의 삶
수천 년 걸쳐 만들어진 농토에
수직의 아파트 건물이 들어서고 있다
농촌을 모방하는 도시의 문명
엘리베이터의 계단 통로, 그 수직의 골목
잊었는가 바벨탑
보라 한 건물을 쌓아 올린 언어의 벽돌
만리장성, 파리 크라상. 던킨 도너츠
차이코프스키, 노바다야끼……
기와 불사하듯 세계 도처에서 쌓아 올리고 있는
이진법 언어로 이룩된
컴퓨터 데스크塔
이제 농촌이 도시를 베끼리라
아파트 논이 생겨 고층 논을 오르내리게 되리라
바다가 층층이 나누어지리라
그렇게 수평이 수직을 다 모방하게 되는 날
온 세상은 거대한 하나의 탑이 되고 말리라
김포평야 물 괸 논에 아파트 그림자 빼곡하다
<기호 108번>
국민들을 위한다면
국민들을 위해 일하겠다는 말을 팔았으면
아무리 최선을 다해 일을 하셨어도
진정 국민들을 위하였다면
자신이 부족하였음을 느끼셨을 텐데
부족하여
미안하여
재산을 다 헌납하시거나
아무도 모르게 선행으로 다 쓰셨어야 옳았을 텐데
재산이 늘었다니요!
잘못 전달된 거겠지요
설마 그럴 리야 없겠지만
혹 재산을 늘린 분들이 계신다면
대통령님이시거나, 국회의원님이시거나, 검사님이시거나,
도지사님이시거나, 시의원님이시거나, 농협장님이시거나,
다 개새끼님들 아니십니까
국민들을 위하여 일하겠다고
말을 파신 분이나
말을 파실 분은
중생들이 다 극락왕생할 때까지
성불하시지 않겠다는
기호 108번
지장보살님 꼭 한 번 생각해주세요
<개>
망둥이를 낚으려고
노을 첨벙거리다가 돌아오는 길
어둠 속에서도 개는 내 수상함을 간파하고
나를 겁주며 짖는다
내가 여기 더 오래 살았어
네가 더 수상해
나는 최선을 다해 개를 무시하다
시끄러워
걸음 멈추고 개와 눈싸움을 한다
사십여 년 산 눈빛으로
초저녁 어둠도 못 뚫고
똥개 하나 제압 못 하니
짖어라
나도 내가 수상타
서녘 하늘에
낚싯바늘 같은 달 떠 있고
풀 꿰미에 꿴 망둥이 댓 마리
푸덕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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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 1962년 충북 중원군 노은면 출생. 1988년 〈세계의 문학〉에 시 「성선설」등을 발표하면서 등단.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시집 『우울씨의 일일』,『자본주의의 약속』,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산문집 『눈물은 왜 짠가』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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