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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인 문 학 상

2007 〈시와 시학〉포엠토피아 신인상 당선작 / 고 선

by 솔 체 2014. 10. 24.

2007 〈시와 시학〉포엠토피아 신인상 당선작 / 고 선

우울憂鬱ㆍ1



내 속에 이상한 내가 들어와 있어요. 어스름 녘이면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떠다니다 밤이 되면 이 방 저 방 돌아다니며 울어대는, 혼자 있으면 견딜 수 없고 곁에 있어도 초조해요. 악마들로 가득한 창문들, 가슴을 옥죄는 쇠사슬, 남은 내 푸른 생의 울타리를 넘겨다보는 악마들에 몸을 떨다가 노랑색 주홍색 알약들을 삼키지요

거울 속의 내 얼굴을 들여다보지만 눈이 보이지 않아요. 퀭한 구멍만 남아있어요, 어머니. 금단의 사과나무에 똬리를 틀고 긴 혀를 날름거리며 이편으로 넘어오는 저 악마를, 그 저녁 잃어버린 커다란 눈망울을 찾아주세요, 어머니!

벌거숭이로 지구별에 내려 금빛 뜰을 뒹굴며 파초처럼 자라고 눈먼 사랑 사랑을 해서 달덩이 같은 아이들을 낳고 폭풍우 같은 생의 고비 고비를 저만큼 넘긴 이 황혼의 저녁나절에 낯선 대륙에서 검은 실루엣으로 부유하는 내 영혼은 절망의 어둠입니다,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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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등뼈



전화선 저편에서
당신의 등뼈가 무너져 내렸다

뒤늦은 출근길
구로공단 허물어진 담장 아래
덩굴장미 샛붉어 울음이 나왔다.
가시 숲 장미들이 건너와
소리도 없이 터지는 꽃봉오리 속에서
붉은 띠를 이마에 두른 당신이 걸어 나왔다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컨베이어벨트에서 누수된 시간에 기대어
검은 빵을 씹을 때,
해장국에 소주를 까는 야근 끝의 신새벽
주막집 탁자에서도, 비틀거리던 매립지
쓰레기더미 위로 내민 고무장갑에서도
당신이 걸어 나왔다

내게는 푸른 혁명이었고 역사였던
당신의 등뼈를 딛고 굴러가는 전철 안에서, 나는
월장하지 못하는 덩굴장미들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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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전화선 저편에서
꺽꺽대던 친구

화장터 굴뚝을
빠져나가는 아내의 육신을 바라보면서도
육개장에 밥 말아 삼키던 일이나
좋아하던 귤 한 조각
넘기지 못하고
마르고 타버린 삭정이 몰골
그 몰골을
잊지 못해서가 아니라

이십 년을 함께 했던
정 때문이 아니라
새롭게 시작한 사랑
그 뻔뻔한 사랑을 다시
하게 되어 우는 것이라고 말할 때

어디선가
모래 바람 불어오고,
클레임 걸린 변두리 공사장의 풍경이
아득해서,
나는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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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ㆍ2



어머니, 꽝꽝 못을 쳐주세요 창문을 타고 추락하는 실루엣이 보여요. 복제된 수많은 창들이 검은 상장을 두르고 손짓을 해요 어서 온 어서 와 여길 뛰어넘어봐 천국이 보인단다 아니에요 거긴 마왕의 나라잖아요. 어머니 나를 안아주세요 눈도 귀도 막고 세상을 닫아주세요. 상여집 안을 들여다보지 말라던 엄마의 엄명을 어긴 탓인가요? 내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 어머니 그 두터운 그늘 속에 꼭꼭 숨겨주세요.

저 소리 들어요 따각따각 죽음의 말발굽소리에요. 홍역의 꽃불 속에서도 들었던, 어머니 어서 창문에 꽝꽝 못을 쳐주세요 내 손을 놓지 마세요. 아무것도 어떤 소리도 보고 듣지 못하도록, 오직 당신의 숨소리만 들려주세요. 아아, 들큰하고 비릿한 당신의 젖냄새가 사무치게 그리워요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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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돌



자꾸만 눈물이 흘러
엿장수 놀려먹은 일 석유장수 골려대던 일
원기네집 뒤꼍 풋살구 따먹은 일 풋포도 훑어내던 일
마음에 걸려, 가버린 아버지에게 대들던 일
빵 한 조각 얻기 위해 혈기 부린 일
파란 인광을 뿜어대며 달려온 시간들

독을 빼내야
소리쳐 울어 내 속의 독을 빼내야 하는데
입술을 깨물며 하릴없이 이불만 뒤집어쓰네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도 즐겁지 않아

심장이 턱에 들러붙은 늙은 엄마 문병 왔어도
살아내야 할 날들만 까마득히 보이는 걸
돌이 된 독을 다 흘려보내야 하는데

저기 좀 봐,
원기네집 살구꽃이 지고 있어
엿장수 똥구멍은 찐득찐득 소금장수 똥구멍은 맨들맨들
봐 저기 좀 봐,
엿장수 지나가고 석유장수도 지나는
원기네집 울타리너머로 청포도가 열려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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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선 / 전북 부안 출생. 협성대 문예창작과 졸업. 2007년 《현대인》으로 소설 등단. 한국소설가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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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유재영, 김기택

말과 표현의 차이


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 50여 편을 읽으며 많은 아쉬움을 느꼈다. 첫째는 신인 정신의 부족이다. 대부분 작품들이 판에 박은 듯한 일상사와 사적 체험에 대한 과장된 표현이 그것이었다. 두 번째로 현대시에서 가장 중요시해야 할 「말과 표현」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인으로써의 「거친 고통」이 없는 산문적 진술들은 어수선한 행간 읽기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윤선중 씨의 「사물이 있던 자리」, 정옥자 씨의 「목어」, 최형심 씨의 「봄」, 황여진 씨의 「늦은 밤의 춘화」같은 작품들은 구성면에서 안정된 수준을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정옥자 씨의 「목어」는 당선권에 다가섰지만 다른 작품에서 “잠들어도 모르는 둔한 사람처럼/ 묵묵부답의 자세”와 같은 산문적 용어의 남발이 결정적으로 흠이 되었다. 윤석중 씨의 작품 역시 여러 곳에서 반짝이는 시적 재능을 보여주고 있으나 완성도 면에서 더 노력이 요구되었고, 최형심 씨는 많은 가능성이 있으면서도 시적 긴장감이 부족했다. 끝으로 황여진 씨의 경우에는 오랜 습작 기간이 엿보이긴 했으나 불안한 비약들이 전체적으로 시의 흐름에 방해가 되고 있었다.
당선작으로 뽑힌 고선 씨의 작품들은 언어를 다루는 솜씨와 완성도 면에서 다른 응모자에 앞 서 있었다. 다소 사변적으로 흐를 불안이 없지는 않으나 발상이 새롭고 시의 전개가 활달했다. 「우울ㆍ1」에서 어둠과 절망과 병치시킨 ‘어머니!’는 시를 읽는 사람에게는 또 다른 울림으로 다가 왔다. 「당신의 등뼈」 역시 섬세함 보다는 비유와 상징 면에서 신인다운 패기와 가능성으로 평가하기에 충분했다. 그 밖의 작품들도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앞으로 표현과 묘사의 정밀함만 더해진다면 좋은 시인이 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시는 ‘말이 아니라 표현’이라는 점이다. 요즘 젊은 시인들의 작품 가운데에는 시가 표현이 아닌 말이 된 경우가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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