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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참고서재

조 정의 '수목장' 평설 / 조해옥

by 솔 체 2015. 1. 15.

조 정의 '수목장' 평설 / 조해옥


수목장

조 정


나는 형벌을 좋아해,
죽은 후에도 직립하여 형벌 같은 생각에 빠져 살면 좋지

이 숲에서 저 숲으로 자욱하게 건너가고도 싶겠지만

풋눈 뜬 뿌리들이 바위를 껴안으며 그러지 마 그러지 마
참을 수 없는 울음까지 잘 참는
나를 붙박아 버리니까

나는 대체
어디로 가다가 뒤돌아보는 새하고 눈이 마주친 거야?

댓잎 자국마다 서북풍 팽팽한 내 쌍화점 솥뚜껑 같은 이마를
이슥토록 쪼는 새 부리를
배가 불러 손금이 터질 지경인 손을 들었다 놓기도 하지

아무 것도 아닌,

생을 견디다 못해 내 딸이 찾아와 말 물으면
내가 준 마음 반 잔
묵혔다가 내주는
, 모서리가 들떠 뼛속까지 비 내리는 구천 숨기지 못하는
어제 사람이던
습기



위의 시에서 조정 시인은 수목장(樹木葬)이라는 장례 방식과 죽음 이후에 대해 노래한다. 수목장은 나무에 의탁하여 육신의 자연회귀를 바라는 장례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조정 시인은 수목장을 행함으로써 망자가 자연으로 돌아가 자유로워질 것이라는 우리의 기대를 철저히 깨뜨린다. 그는 나무의 고착과 직립의 성질을 빌려 수목장이 살아서의 고착과 직립의 형벌을 그대로 드러내주는 것으로 인식한다.

시의 화자는 2연과 3연에서처럼 눕지도 못하고 오로지 직립만 허락되는 생, 한 곳에서만 고착되는 것만이 허용되는 생을 산다. 그는 형벌 같은 생에서 벗어나지 못 하는 자신이 죽은 후에도 여전히 '형벌 같은' 존재 조건을 벗어날 수 없으리라는 상상에 사로잡혀 있다. 그렇기 때문에 화자가 '좋아해' 혹은 '좋지'라고 감정을 표현할 때도 그 표현은 반어적이다. 이처럼 형벌 같은 생을 사는 화자에게 죽은 후의 장례 방식은 고착과 직립을 벗어나지 못하는 수목장이 가장 어울릴 것이다. 화자가 자신의 장례를 수목장으로 치러질 것으로 상상하는 것은 그의 현재적 조건이 그에게 주는 압박감의 정도를 드러내 준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어제는 사람의 형상이었으나 오늘은 나무에 내려앉은 습기와 다를 바 없는 존재라는 것을 부정하고 은폐시킨다. 우리는 인간이 지닌 한계와 누추함을 숨기느라 평생을 소진시킨다. 우리의 위장된 생을 벗어 던지는 것이 죽음이며, 습기에 불과한 본래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수목장이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화자가 "죽은 후에도 직립하여 형벌 같은 생각에 빠져 살면 좋지"라고 발화하는 것은 어쩌면 반어적 표현이 아닐 것이다. "모서리가 들떠 뼛속까지 비 내리는 구천 숨기지 못하는/ 어제 사람이던/ 습기"는 인간의 본질적 존재의 형상일 것이다.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2008년 11-12월호, 「시사사 리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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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목장'에서 특이한 쉼표의 쓰임에 대하여 ]


강인한 : 요즘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그리고 전에 물어본 내 질문에 대한 답 등
많이 궁금합니다. 그게 무슨 질문이었느냐면,

생을 견디다 못해 내 딸이 찾아와 말 물으면
내가 준 마음 반 잔
묵혔다가 내주는
, 모서리가 들떠 뼛속까지 비 내리는 구천 숨기지 못하는
어제 사람이던
습기

에서 '모서리' 앞에 쓰인, 시행 첫머리의 쉼표를 쓴 시인의 의도가 무얼까 하는 것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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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정 : 문장 앞 쉼표에 대해 이제야 말씀드립니다.
술술 읽다가 고삐를 탁 잡는 불편함을 의도했습니다.
이생을 견디는 딸과 저 생에 선 화자를 차별화하기 위한 의도도 있었습니다.
쉼표로 시작하는 것이 저승인 듯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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