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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참고서재

황규관의 '예감' 감상 / 김수이

by 솔 체 2015. 1. 16.

황규관의 '예감' 감상 / 김수이


예감

황규관


이제 사랑의 노래는
재개발지역 허름한 주점에서 부를 것이다
가난한 평화는 한 블록씩 깨어지고 있다
그 아픔의 마른 냄새를 맡으며
잃어버린 대지를 찾지 않겠다
모든 밥벌이가 단기계약이듯
사랑도 이제 막바지다
새끼들 칭얼거림을 다 듣고
아내의 지친 한숨도 내 것으로 한 다음에야 노래는
터져나올 것이다
깨어진 기억은 길가에 치워져 있다
천장이 한없이 낮아
일찍 취하는 주점에서
마시고 내린 빈 잔을 가슴에 가득 담을 것이다
사랑은 막바지고
외로움도 좋다
백척간두가 내 힘이다
그러나 다시 노래는 울고 말 것이다
끝내 오고야 말 폐허까지
폐허의, 폐허의 아침까지



‘폐허’‘패배’‘실패’등의 단어는 발성법 자체에도 균열과 하강의 기운이 스며 있다. 파열음과 마찰음으로 이루어진 이 단어들은, 소리들이 서로 부딪쳐 침전하며 서둘러 끝을 맺는 형태로 발음된다. 이‘패배적인’발성법을 세상 가득 울려 퍼지는‘노래’의 정반대 차원으로 바꾸어 놓은 시인이 있다.‘패배는 나의 힘’이라는 시적 슬로건을 삶과 시의 행동강령으로 삼고 있는 황규관이 그이다.

‘예감’은 최근 우리의 어려운 경제상황과 직결되어 더 진한 실감을 안겨준다. 전 세계를 점령한 거대 자본의 위력은 사람들의 ‘밥벌이’를 점점 더 가혹한 투쟁의 행위로 만들고 있다. 밥벌이의 전쟁터가 된 도시에는 사랑이 깃들 공간조차 사라져, 이제 ‘사랑의 노래’는 곧 철거될 재개발 지역의 허름한 주점에서나 부를 수 있게 되었다. 궁핍한 생활에 지친 처자식의 신음은 지금의‘가난한 평화’가 얼마나 아슬아슬한 것인가를 날마다 일깨우며 가장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그러나 황규관은, 삶에 패배한 이 순간이 바로 노래가 터져 나오는 순간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노래’는 ‘나’를 압박해 오는 혹독한 삶의 무게를 “내 것으로 한 다음에”야 터져 나오는 것이다.‘노래’는 막바지에 이른‘나’의 사랑과 외로움을 전심전력으로 ‘울’며 터뜨리는 자기 갱신의 행위인 것이다. 그 순간에 ‘노래’는 비로소 세상을 향해 울려 퍼지는 것이다. ‘백척간두’를 ‘힘’으로 삼는 놀라운 역전의 비밀,‘폐허’와‘폐허의 아침까지’를 울며 노래할 수 있는 의지의 비밀이 여기에 있다. 고단하고 지친 그대여, 황규관이 선창하는‘노래’에, 조만간 그대 스스로 터뜨리게 될 노래의‘예감’에 함께 젖어들지 않으시려는가.


― 김수이 (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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