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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참고서재

뒷문 / 김희업

by 솔 체 2015. 3. 30.

뒷문

 

김희업

 

 

어머니는 홀로 브래지어를 풀지 못한다

문이 많은 어머니, 생산을 해내던 곳간도

굳게 닫힌 지 오래

그만큼 먼 시간의 門 지나왔다

어머니는 브래지어 뒷문을 어떻게 닫았을까

브래지어를 풀도록

호락호락하지 않은 어깨

“침놔 주는 한의사 때문” 이라며,

평소 안 하던 브래지어를 한 어머니

그 순간 여자로 환생한다

젖을 달라고, 밤낮으로 어머니의 잠결 파고들어

문 두들겨 대던 자식 다섯은,

뒷문 열어 놓은 채 슬금슬금 빠져 나갔다

뒤늦게 뒷문 꼭 걸어 잠그는 어머니

나는 브래지어를 풀어

바닥에 놓는다

제법 탐스러운 둥그런 무덤이다

드러난, 말라붙은 젖가슴

태어나 처음 본 듯, 나는

새삼스럽게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자신의 무덤 번쩍 들어

한쪽으로 옮기는 칠순의 어머니

이다음에,

천국의 뒷문

홀로 닫을 수 있을는지

 

―신작시집 『칼의 회고전』에서

 

어머니의 브래지어

 

 

  과도한 수사와 암호 같은 비유들이 해독불능의 난수표처럼 남발되는 와중에, 이런 시들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요려부득의 난해한 말씀들은, 가방끈 긴 평자들이 더 어렵게 해독해 주시고, 그러한 상호동조의 폐쇄적회로가 시단의 전위부대를 형성하고 있다. 시가 이토록 어려워진 것은, 체험은 부재하고 관념만 비만해진 탓이다. 문필 활동의 불안으로 인해, 너도 나도 들고 있는 대학원이란 보험이 또 작위적 관념의 배양소라는 점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문학의 아카데미화는 댄디한 먹물 시인들을 양산하였으니, 이들은 모두 ‘홍대리안’의 아비투스를 지녔더라. 오호통제라.

 

  절박한 사유와 진솔한 생활 감정을 지닌 시는 왜 찬밥이 되는가. 일단 뜨고 보자는 생각으로 난해하게, 거칠게, 위악적으로 포장된 시들을 보아라! 택시기사도 시를 쓰고, 철무럼 주인도 시를 쓰고(22회 『시안』신인상 홍정순 시인의 경우), 무역회사에 다니는 김 대리도 시를 써야한다. 어쨌든, 이런 얘기를 해봤자 내 얼굴에 침 뱉기다.

 

  서두가 장황했다. 김희업 시인의 「뒷문」은 좋은 시다. 애초에 이런 시는 난해한 분석과 해석이 필요하지 않다. 누구나 한 번쯤 읽으면 무릎을 탁치게 된다.(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가방끈 긴 관념론자이거나 아예 문학적 소양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나는 이런 시들이 더 많이 창작되고 향수가 되기를 바란다.

 

  브래지어를 혼자 풀지 못해, 중년의 아들에게 “브래지어 뒷문”을 맡기는 “칠순의 어머니”를 떠올려 보라! 말할 수 없는 생의 서글픔과 애잔함이 전해지지 않는가. 자식들 다 떠나보낸 빈 가슴에 어머니는 왜 다시 브래지어를 하신 것일까. 이유인즉, “침놔 주는 한의사 때문” 이라는 것! 젖 달라고 밤낮으로 보채던 자식들은, 모두 어머니의 열린 뒷문으로 슬금슬금 빠져나갔다. 그렇게 자식들 다 떠나보낸 어머니는 뒤늦게 자신의 뒷문을 걸어잠갔다. 그러나 스스로 풀 수 없는 어머니의 뒷문. 화자는 어머니의 브래지어를 풀어 바닥에 놓는다. 순간 드러나는 “말라붙은 젖가슴”. 순간 화자는 “태어나 처음 본 듯”고개를 돌리고 만다. 브래지어는 “제법 탐스러운 둥그런 무덤”이지만, 그것은 쪼그라든 빈 가슴을 덮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어머니는 자신의 젖무덤을 감싸고 있던 무덤(브래지어)을 한쪽으로 옮긴다. 이처럼 칠순의 어머니는 자신의 생을 다하는 날, 또 다른 봉분으로 거처를 옮기실 것이다. 여기서 화자가 말한다. “천국의 뒷문/홀로 닫을 수 있을는지”라고. 아마 어머니는 천국의 뒷문을 닫지 않을 것이다. 자식들이 자라나 열린 뒷문으로 슬금슬금 빠져 나갔듯이, 열린 천국문으로 자식들이 다 따라 들어온 후에야, 뒤늦게 문을 잠그실 것이다. 이것이 우리네 어머니가 뒷문을 단속하는 방법이다. 아름답고 위대하지 않은가!

 

『詩로 여는 세상』2009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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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 / 1970년 서울 출생. 한양대 대학원 국문과에서 박사학위. 2002년 《현대문학》신인추천에 평론이, 2007년 <매일신문>신춘문예에 소설이 각각 당선되어 등단. 평론집 『한국 소설과 근대성 담론』『폐허, 이후』등, 200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예진흥기금(소설부문)을 수혜. 현재 관동대 미디어문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 <詩로 여는 세상>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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