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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인 문 학 상

2010년 《시에》신인상 당선작_ 김민호, 한경용

by 솔 체 2015. 4. 19.

2010년 《시에》신인상 당선작_ 김민호, 한경용

 

 

아카시아 암자 (외 2편)

 

   김민호

 

 

벼랑 끝에 집을 지었다

바위틈에 낀 발가락마다

여기저기 굵직한 티눈들이 박혀 있다

허공으로 한발 내딛고

헝클어진 머리로 거센 바람을 들이받는다

둔각 이룬 비탈을 축대 삼아

반가부좌를 틀고 균형을 잡았다

호되게 내리치는 죽비

둥근 햇빛은 순간적으로 지나갔다

둥치 안으로 삭힌 언어에서

삐죽삐죽 가시가 돋아

옹이가 된 바람의 불립문자들

속 깊이 메아리치다

껍질을 뚫고 나와 허공을 찌른다

인대가 늘어진 암벽을 딛고

이방인에게 시선을 날리는 초여름

가시 돋치는 바람을 뚫고

박새 한 마리

아카시아 꽃 속으로 날아들었다

 

 

불안의 뿌리는 입술이다

 

 

   오후 2시 1127번 버스가 울산에서 부산으로 내 달린다 바람의 입을 헤집고 종착지를 부른다 따스한 햇볕이 환하게 펼쳐진다 파마머리 아주머니 가방을 껴안은 중년의 사내 볼 주름 깊은 할머니께 고소한 졸음을 청한다 앞좌석에 앉은 여학생이 부신 눈을 비비며 통화 중이다 드러난 치아에서 햇빛냄새가 났다 보철이 빛을 튕겨냈다 계약직 채용 공고문 위로 시선이 굴러갔다 입술을 중얼거렸다 면접 불안이 뿌리를 뻗어 끝없이 나를 옭아맸다

 

   모를 심기 전 아버지는 골다공증 앓는 논두렁에 새 옷을 입혔다 논두렁 잃으면 한해 농사가 시름에 잠긴다고 구멍이 숭숭 뚫린 등판에 모를 심었다 차가운 기억이 일순간 스쳤다 정류장에서 문이 열리자 학생이 내리고 찬바람이 공고문을 밟고 승차했다 버스는 다시 일상으로 속력을 냈다 창문 틈으로 바람이 더 세차게 비집고 들어왔다 사람들은 깊은 한기 속에서도 꿈을 꾸는지 몸을 움츠렸다 뿌리 없는 바퀴가 불안한 생각을 끝없이 오물거렸다

 

 

하고초

 

 

한 번도 가을 색을 알지 못하는 풀이 있다

유월이 펼쳐놓은 들판에

비쩍 말라가는 하고초들

속 빈 꽃잎 나발머리에

보라색 물감을 흥건히 풀어놓았다

햇살에 걸려 운신을 못하던 바람

온 들판을 헤집으며

꽃잎을 세우려 돌아다닌다

 

꿀벌은 안다

시한부 삶도 달콤한 맛이 있다는 걸

한 계절이 전 생애임을 안다

 

여름은 온전한 단맛이므로

말라가는 육신을 후벼 파며

생채기에서 꿀을 모은다

삶의 향기를 잃은 구월

일주문 계단을 걸어

문고리 당겨 불이문에 든다면

여름을 뛰어넘는 하고초가 되어

여기 환하게 피어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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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호 / 경남 양산 출생. 해동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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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과 이별을 하다 (외 2편)

 

   한경용

 

 

언제나 승자인 그가

빛무리의 유리벽을 나갈 때

나는 그의 산 그림자에 묻힌 음지식물이었다.

 

그가 강의실에서 바오밥나무를 말하고 있을 때

나는 벤치에서 시간의 나무를 자르며

나이팅게일의 울음을 귀로 마셨다.

 

한 번은 그가 투우 조련사처럼 경기장을 제압한 날,

나의 오토바이는 미루나무에게 위로 받으며

부스러기 잠을 잤다.

 

나에게는 오지 않는 간절한 환희가

냄새 없는 햇살로 그 곁에서만 맴도는 것인가.

 

그의 지식이 소금 창고가 되어 환호를 받을수록

눈 속에 무거운 바다를 넣고 다닌 나,

 

그가 장미원에서 들국화를 그리워할 때

굴곡이 심한 나의 못물은

차디찬 구름꽃으로 내 얼굴을 그려 주었다.

 

그믐이 저만큼인데 연극무대를 내려오는 내게

행방불명 된 내 속의 누군가

알람으로 알려준

인형에게도 생일이 있다는

 

애완견이 떠도는 길에서

나는 천사의 책을 태우고

달을 싣고 가는 마차에서

노을을 탄 커피를 마셨다.

 

나는 아침마다 이별한다.

버려졌거나 찢어진 계급장과

쓰러진 침대,

검은 예복의 지난날들을

파도는 언제나 골짜기로 밀려갔었다.

 

오후의 유리창 속 거실 저편

아다지오가 흐르는 그의 종신형 의자,

내 안의 갈바람이 비바체로 부는

계곡의 항명

 

 

달빛 조각

 

 

노인도매상가라는 병원에 계신

어머니의 종합고독세트를 디스플레이 하면

참외를 깎아 먹던 어릴 때의 냄새가 있습니다.

건반 위에서 키운 향긋한 그리움이 있습니다.

제주도의 4·3 구덩이에 숨었다가

눈꽃 속의 총알을 피해 살아나신

달빛 조각이 있습니다.

그 멜로디의 굴레에서 즉흥 모자를 쓰고

국제시장에서 비로도 장사를 하며 여덟 식구를 먹여 살리셨던 당신의 스무 살,

맹렬한 시장터에 연꽃 향기를 세일 하신 부처님이

타월로 지친 마음을 닦아 드리고 있습니다.

강렬한 묘사와 터치를 하며

제주도의 산과 바다를 누볐던

바람은 당신의 악보

환상의 올레를 연주하는

페인트가 벗겨진 단층집 나일론 빨랫줄 위로

팔짱을 낀 햇빛이 어슬렁거리면

어머니의 뒷겨울에서 나오는 안개 바람으로 말려 올린 아이들

병실에 놓인 팬지가 설레던

하늘에 속살이 묻힐 시간,

눈먼 정원에 버무려질 봄을 입히는 밤

바지선을 예인하는 아버지를 따라 가시고 계십니다.

 

 

 

 

지나가는 바람과 함께 캄캄한 극장으로 들어갔다.

“생일 축하합니다.”

삼십 년 다닌 회사의 액정 문자 관리인이 조기 퇴직을 알려 왔다.

곡예 비행하듯 살아온 날들이

만 볼트의 빗방울로 쏟아지자

나는 감기에 걸려 블라인드를 내렸다.

지난여름이 아픈 친구는 다시 몸조리를 하여 앞서 가고

이번 가을이 아픈 한 친구는 아예 돌아오지 않았다.

나의 멀미는 쌀가마니를 운반하다

진흙 위에 와르르 쏟아 버렸다.

흙덩이, 돌덩이까지 섞인 쌀을 주섬주섬 담다가

도미노 게임같이 기쁜 일이 모두가 사라져 버렸다.

퇴직하던 날부터

목을 죈 넥타이와 케시미어의 머플러가 소동을 일으키며

쉰을 스캔으로 떠서 들고 다녔다.

자재 적재장의 가시 철망인 내가

쌩쌩하게 잘도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이 하늘처럼 보였다.

삼백 원짜리 즉석 위안을 마시려다

버튼을 잘못 눌러 얼음을 먹었다.

검은 다이어리에서 깨어나

장거리 역전 슛을 날리는 독감 걸린 시

보헤미안의 들판을 달리는 바람과

내 안에서 코러스를 하는

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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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경용 / 제주 출생. 인하대학교 졸업 및 한양대학교 대학원 문화관광과 졸업(석사).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창과 시 전공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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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시의 백화쟁명 혹은 시의 르네상스에서 어떻게 쓸 것인가

 

 

   일찍이 미당 서정주 시인은 시 쓰기의 세 단계로 1) 감각의 단계 2) 정서의 단계 3) 인지의 단계가 있어야 한다고 진술한 바가 있다.

   만하임 쿤에 의하면 패러다임은 본래 절대적이거나 객관적인 것이 아니다. 당시대 사회 구성원의 합의에 의해 구성된 것이 패러다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합의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고 변할 수 있는 것이 패러다임이다. 이는 문학예술이라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더 크게 시대의 변화에 민감하게 작동되는 것이 문학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시에 대한 취향과 기호가 시대마다 다르고 당시대 안에서도 스펙트럼이 넓게 펼쳐지는 것은 위와 같은 사정에 따른 결과이리라. 그럼에도 유행하는 흐름이나 동향 너머 이면에 장르에 대해 암암리 작용하는 묵시적 합의라는 게 있다. 이는 시 장르만의 고유한 특성이나 자질에 대한 공통의 이해 때문이다.

   현재 우리 시단은 그야말로 각기 다른 방식과 내용으로 이루어진 다기한 개성들이 이 눈치 저 눈치 보지 않고 에너지를 맘껏 분출하고 있는 시의 백화쟁명 혹은 시의 르네상스를 맞고 있는 형국이다. 한 잡지에 아주 이질적인 경향의 시편들이 나란히 이웃해 자리해 있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는 시의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시인의 그 어떤 경향의 색다른 작품이라 하여도 시 장르만의 고유한 특성과 자질을 깡그리 무시한다면 그 시편을 우리는 시격에 맞는 시로 볼 수 없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생각 때문에 평의 서두에 에두름 없이 서정주 시인의 시론을 언급한 것이다. 요컨대 선자들은 이러한 시 장르에 대한 기본 인식을 평가의 우선순위로 삼으면서 투고작들을 읽어나갔다는 것을 밝혀둔다.

   예심을 걸러 본심에 올라온 10여 명 100편이 넘었다. 그 중 우리는 김민호 씨의 「아카시아 암자」외 2편과 한경용 씨의 「아침과 이별을 하다」외 2편을 당선작으로 뽑는다. 이 두 분의 시편들은 위에서 우리가 언급한 시 장르만의 고유의 특성과 자질을 시로서 올곧게 보여주고 있어 주목을 끌었다. 김민호 씨의 작품들은 시 언어에 대한 자의식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낯익은 생활에서 시의 의미를 건져 올리는 장점을 지녔다. 이는 견자의 태도를 지닌 것으로 자칫하면 구태의연한 교훈이나 계몽으로 떨어져 시 읽는 재미를 반감시킬 수도 있으나 씨의 작품은 다르다. 씨의 작품들은 이런 우려와 걱정을 피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씨의 시편들은 재치가 있다. 심각한 것을 심각하게 말하면 오히려 진실이 드러날 것 같아도 심상해 질 수 있다는 것을 씨는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심각한 것을 눙쳐 말할 줄도 알아야 한다. 씨의 장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경용 씨의 작품은 개성이 강할 뿐만 아니라 언어를 장악하는 능력을 지녔다. 무엇보다 시적 대상을 현대의 언어 감각에 맞게 운용할 줄 아는 미덕을 발휘하고 있다. 그래서 역사나 삶에 대한 만만치 않은 통찰이나 인식을 드러내면서도 결코 그것이 무겁거나 칙칙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 점이 소재 면에서 볼 때 비슷하게 보일 수 있는 리얼리즘 경향의 시인들에서 그를 벗어나게 해준다. 박기임 씨의 작품들을 놓고 우리는 오랫동안 숙고했으나 좀 더 기다리자는 쪽으로 의견의 가닥을 잡았다. 그의 시편들은 더러 반짝이는 감수성을 발하고는 있으나 짜임새에 있어 미세하지만 분명한 틈새가 보이고 있다는 아쉬움 때문이었다.

   아무쪼록 당선자들은 우리 시단을 환히 비추는 새로운 별들로 성장하기 바란다.

 

   심사위원 / 이재무(시인), 김선태(시인, 목포대 교수), 양문규(시인, 본지 주간)

 

 

 

      ——《시에》2010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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