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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참고서재

김지녀의 「지구의 속도」 감상 / 문태준, 김연수

by 솔 체 2015. 8. 5.

김지녀의 「지구의 속도」 감상 / 문태준, 김연수

 

지구의 속도

 

   김지녀(1978~ )

 

 

천공(天空)이 아치처럼 휘어지고 있다

빽빽한 어둠 속에서

땅과 바람과 물과 불의 별자리가 조금씩 움직이면

새들의 기낭(氣囊)은 깊어진다

 

거대한 중력을 끌며 날아가 시간의 날카로운 부리를 땅에 박고

영원한 날개를 접는 저 새들처럼,

우리가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는 일들에 대해 생각할 때

교신이 끊긴 위성처럼 궤도를 이탈 할 때

 

우리는 지구의 밤을 횡단해

잠시 머물게 된 이불 속에서 기침을 하고

다정한 눈빛을 보내지만,

묵음의 이야기만이 눈동자를 맴돌다 흘러나온다

문득 창문에 비친 얼굴을 바라보며

서로의 어깻죽지에 머리를 묻고 잠들고 싶어도

 

근육과 뼈가 쇠약해진 우주인과 같이

둥둥 떠다니며 우리는 두통을 앓고

밥을 먹고 함께 보았던 노을과 희미하게 사라지는 두 손을

가방에 구겨 넣고는 올 이 밤의 터널을 지날 것이다

 

어딘가로 날아갈 수밖에 없는 새들의 영혼처럼

누구도 알아채지 못하는 지구의 속도처럼

조용히 멀미를 앓으며

저마다의 속도로 식어가는 별빛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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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낮이 지나가는 속도를, 밤이 지나가는 속도를 완벽히 감각하며 살 수는 없어요. 낮과 밤이 흐르는 속도가 빌딩의 회전문 같다면 우리는 살 수가 없지요. 호되게 현기증에 시달리고 말테니.

   별자리를 유심히 살펴볼 기회도 없는 우리는 기침을 하고, 두통을 앓고, 가벼운 멀미를 앓을 뿐이죠. 그것이 지구의 속도 때문임을 알아채지도 못한 채. 그렇다고 불끈 쥔 주먹을 하고 살아야 할까요. 눈물은 눈물로, 미소는 미소로 받아들이며 사는 것이지요. 눈물과 미소의 원천과 속도를 알 수 없듯이.

   오규원 시인은 생전에 남긴 한 시구(詩句)에서 이렇게 노래했지요. “만물은 흔들리면서 흔들리는 만큼 / 튼튼한 줄기를 얻고 / 잎은 흔들려서 스스로 / 살아있는 잎인 것을 증명한다”라고.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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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부터 호숫가 산책로에 떨어져 죽은 매미들이 자주 보이네요. 죽은 척하는 것처럼 나무에 매달려 있을 때와 다른 게 없네요. 귀청을 찢어놓을 듯 시끄럽던 그 울음만 빼고. 문득 절창이란 말이 떠오르네요. 그 모든 절창들은 어디로 갔을까요?(미당은 작년 것만 남았다고 했지만).

   처서가 지나니 매미들 동백꽃잎처럼 후드득 떨어지네요.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말하던 갈릴레오가 떠오르는, 무더운, 하지만 여름의 마지막 나날들입니다.

 

김연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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