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기의 언어와 트랙터의 언어 / 홍일표
간이식당
이 원
끊어져버린 전기처럼 한 사내
등받이가 없는 간이 의자에 앉는다
그가 꽂힐 콘센트가 보이지 않는다
사내의 잠긴 허리 근처에서
수도꼭지 두 개도 잠겨 있다
카운터 너머 진창 같은 여자는
수도꼭지 옆 온수 탱크 앞에 선다 그래도
온수 탱크와 수도꼭지는 차가운 은빛이고
허옇게 뒤집어진 고무장갑은 시간을 잔뜩 묻히고
붉은 벽의 허공에
형광등과
여자와 사내가 흐릿하게 떠 있다
그곳으로 들어가는 손잡이는 보이지 않는다
유리문 밖은 차들이 굉음을 내며 도로를 질주한다
여자와 사내는 모른다 어디쯤이 이 세계의 통제선인지는
헐거운 세계를 조이고 있는 나사못처럼
단단한 등만 보이고 있는 여자와 사내
여자와 사내를 열고 밤이 산업용 석회액을 부어넣는다
굳은 후에 사내와 여자를 뜯어낸다
엉킨 전선 다발 같은 것들이 석고 밖으로 빠져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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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언어에는 쟁기의 언어와 트랙터의 언어가 있습니다. 이것을 평론가들은 공동체의 언어와 개인의 언어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쟁기질을 하면서 자란 사람들이 쓰는 어법과 트랙터로 논밭을 경작하면서 자란 사람들의 어법은 판이하게 다르지요. 그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할 때 틈이 생기고 소통불능의 언어, 괴물들의 외계어라는 말이 나오게 됩니다. 쟁기가 트랙터를 바라볼 때 분명히 외계인이요 괴물이겠지요. 뭐 저런 게 다 있나 싶겠지요.
시는 그렇지만, 평론의 양상은 좀 다릅니다. 젊은 평론가들일수록 시보다 더 난해한 평론을 씁니다. 사용하는 언어의 의상이 다르더라도 문장은 비교적 정확하게 써야 할 텐데 비문(非文)이 자주 눈에 띄고, 논리적 오류도 곳곳에서 목격됩니다. 얼핏 보면 매우 정치(精緻)한 이론 같은데 꼼꼼히 분석해보면 빈약한 논거의 나열과 견강부회(牽强附會)하는 논리 전개가 너무 억지스러워 자꾸 딸꾹질이 나옵니다. 그래도 그런 평문들이 내로라하는 유수 문학지에 버젓이 실리는 걸 보면 뭔가 있긴 있는 모양입니다.
이원의「간이식당」은 트랙터의 언어로 일군 암울하고 절망적인 풍경입니다. 전혀 장사가 되지 않는 길가의 조그만 가게인 모양인데 미납된 수도료, 전기료 탓인지 단전, 단수의 상황이 눈에 보입니다. 극한의 처지에 몰려 있는 부부의 암담한 현실에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화자는 창밖에서 그 모습을 무연히 바라봅니다. 아무 희망도 보이지 않고, 그저 마음만 안타까울 뿐 부부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은 없습니다. ‘손잡이’ 없는 현실이지요. 구원의 가능성이 없는 현실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단단한 등만 보이고 있는 여자와 사내’의 절망은 돌덩이처럼 딱딱합니다.
이 때 저벅저벅 다가오는 밤이 부부의 몸에 석회액을 붓습니다. 시인의 뛰어난 상상력이 발휘되는 순간이지요. 석회가 굳은 후에 뜯어내자 뒤엉킨 전선줄만 흉물스럽게 드러납니다. 마치 초현실주의 회화 같기도 하고, 행위예술의 섬뜩한 한 장면 같기도 합니다. 시인은 다 보여주었습니다. 나머지는 독자의 몫입니다. 읽는 이의 감수성과 사유의 폭에 따라 작품에 대한 접근 방식은 달라질 수 있겠지요.
날마다 가슴 베이며 그리워도 갈 수 없는 곳이 있지요. 요즈음 부쩍 명옥헌(鳴玉軒) 백일홍의 안부가 궁금합니다.
홍일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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