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과 무위의 경계에 서다 / 홍일표
병 속에 고양이를 키우세요
강인한
수박 맛있지요
열매가 둥글다는 상식을 넘어
네모 난 수박은 상식보다 맛있을 거야
정사각형 틀 안에 가두고
키운 멋진 수박
처럼
네모 난 유리병 안에
새끼 고양이를 키워 보실래요
부드럽게 부드럽게
새끼 고양이를 병 속으로 유인하세요
얼른 병마개를 닫은 다음
두 개의 빨대를 끼우세요
하나는 먹이를
또 하나는 배설을 위한 장치
들어가면 나온다는 철학을 위한 장치
사랑도 정기적으로 확인이 필요하듯
가끔씩 뼈를 유연하게 하는 약물을
투입하기도 하면
귀여운 고양이는 병에 맞춰 자라지요
자라면서 끝내는 유리병 모양이 된다나요
사뿐한 도약 호기심 많은 질주는 거세된 채
적응한다는 것이 얼마나 훌륭한 미덕인지
고양이는 잘 알지요
분재 고양이 아니 본사이 키튼
네모 난 고양이를 보세요
얼마나 정직하고 우아한지요
죽을 때까지 유리병에 갇혀서
동그란 눈을 깜박이는 본사이 키튼
당신의 맨션에 살아서 빛나는 소품
본사이 키튼.
—— 시집『푸른 심연』(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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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할배를 애드벌룬처럼 하늘로 붕붕 띄워 올린 노자주의자들은 노자 철학의 핵심이 회의론이라고 하면 발끈 할지 모른다. 그러나 노자는 끝없이 회의하고, 종국에는 회의의 모가지를 한 손으로 비틀어버린 할배다. 할배의 오른손에 든 것이 회의론이고 왼손에 든 것이 직관론이다. 회의론은 경험의 울타리를 뛰어넘게 하고, 직관론은 합리적 이성의 딱딱한 머리통 위에서 탱고를 추는 무의식의 사유 활동이다.
강인한 시인의 시를 얘기하려다 보니 노자 할배의 무위(無爲)가 바짓가랑이를 잡는다. 한때 무위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지금은 ‘자연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지 않는 것’ ‘억지로 하거나 함부로 행위하지 않는 것’ 등으로 해석하고 있다.
처음 이 시를 보았을 때 제목이 다소 충격적이었다. 호기심도 발동했다. ‘본사이 키튼’이 무엇인지 모르던 때였으니 당연한 일이다. 노골적으로 환경이나 생태 문제 등을 거론하는 뼈다귀시를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시는 그런 류의 목적시들과 분명하게 궤를 달리한다.
「병 속에 고양이를 키우세요」는 인위적으로 네모난 수박을 만들듯 네모난 유리병 안에 새끼 고양이를 키우는 인간의 잔혹한 행위를 풍자하는 시다. 먹이와 약물 투여로 고양이는 유리병 모양으로 자라고 결국 동물적 본능이 거세된 살아있는 장난감이 된다. 생명이 한낱 장난감으로 전락하는 섬뜩한 순간이다. 이 시는 인간의 반생명적 행태를 비판하는 시지만 단순히 생명 윤리 차원에서만 바라본다면 시가 함의하고 있는 내용을 지나치게 협소하게 파악한 것이다. 이 시는 보다 광의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시다.
인간은 욕망하는 존재다. 그러나 왜곡된 욕망은 인간을 규격화된 틀 속에 가둔다. 틀에 ‘적응’하는 것이 곧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인간의 현실을 조롱하고, 비판하면서 이 시의 의미 영역은 확장된다. ‘고양이’를 ‘인간’으로 바꾸어 읽을 때 시의 울림이 배가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 이 순간 우리 자신이 동그란 눈만 깜박이는 ‘빛나는 소품’이 아닌지 되돌아본다면 그 의미는 더욱 증폭될 것이다.
노자 할배가 휘적휘적 걸어가시며 다시 한 말씀 하신다. 흐르는 물을 흘러가게 하고, 억지로 인위적으로 강물을 틀어막거나 숨통을 끊지 말라고. 생명의 질서는 스스로 그러할 때 가장 아름다운 법이라고.
홍일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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