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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참고서재

지영환의 「간장 게장」 감상 / 박주택, 손택수

by 솔 체 2015. 10. 21.

지영환의 「간장 게장」 감상 / 박주택, 손택수

 

간장 게장

 

   지영환 (1967∼ )

 

 

1

 

간장처럼 짠 새벽을 끓여

게장을 만드는 어머니

나는 그 어머니의 단지를 쉽사리 열어 보지 못한다

나는 간장처럼 캄캄한 아랫목에서

어린 게처럼 뒤척거리고

 

2

 

게들이 모두 잠수하는 정오

대청마루에 어머니는 왜 옆으로만,

주무시나 방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햇볕에

등은 딱딱하게 말라가고

뼛속이 비어 가는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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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시는 가족을 노래한 시가 많은데 이는 서양에 없는 동양적 규범에서 파생한 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가 바로 그 예. 이 때문에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권의 시는 가족의 애틋함을 노래한 시가 많은데, 이는 스페인권이나 아프리카권도 사정은 마찬가지. 전쟁과 천재(天災), 분쟁과 가난 등 질곡의 역사에 말미암은 바는 아닐는지. 어머니, 간장처럼 짠 새벽을 끓여 게장을 만드신다. 그러고는 게들이 자신의 집 속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는 햇볕 쨍쨍한 바닷가 마을의 오후, 혼곤함에 젖으신 어머니, 방 안으로 들어오시지 못하고, 대청마루에서 옆으로 쪼그리고 주무신다. 등이 딱딱하게 말라가고 뼛속이 비어가는 게처럼, 아프게 주무신다. 가족은 존재의 거소(居所)이자 사랑이 싹트는 곳으로 정서적 유대를 갖는 공동체. 희생과 사랑으로 이를 지키시는 어머니….

 

박주택 <시인>

 

 

   한말의 한학자 윤우당은 “창자 없는 게가 참으로 부럽구나/한평생 창자 끓는 시름을 모르니”라고 읊었다. ‘無腸公子(무장공자)’라는 게의 점잖은 별칭을 두고 읊은 시인데, 게장에 한번이라도 밥을 비벼 먹어 본 적이 있다면 고개를 흔들 것이다. 작게 퇴화해 잘 보이지 않지만 게에게도 분명 창자가 있다. 그러니 단장의 아픔이 게라고 없을 리 있겠는가. 간장 같은 캄캄한 어둠 속에서 뼈를 비우고도 등딱지마저 밥그릇으로 내어주며 말없이 등골을 빨리는 삶이 여기 있다.

 

손택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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