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주의 「고등어 울음소리를 듣다」감상 / 고성만
고등어 울음소리를 듣다
김경주
깊은 곳에서 자란 살들은 차다
고등어를 굽다보면 제일 먼저 고등어의 입이 벌어진다 아…… 하고 벌어진다 주룩주룩 입에서 검은 허구들이 흘러나온다 찬 총알 하나가 불 속에서 울고 있듯이 몸 안의 해저를 천천히 쏟아낸다 등뼈가 불을 부풀리다가 녹아내린다
토막을 썰어놓고 둘러앉아 보라색들이 밥을 먹는다
뼈도 남기지 않고 먹어치운 후 입 안의 비린내를 품고 잠든다
이불 밖으로 머리를 내놓고 보라색 입을 쩝쩝거린다
어머니 지느러미로 바닥을 치며 등뼈를 세우고 있다 침 좀 그만 흘리세요 어머니 얘야 널 생각하면 눈을 제대로 못 감겠구나 옆구리가 벌어지면서 보라색 욕창이 흘러나온다 어머니 더 이상 혀가 가라앉았다가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어머니 몸에 물을 뿌려주며 혀가 가슴으로 헤엄쳐가는 언어 하나를 찾았다 생이 꼬리를 보여줄 때 나는 몸을 잘랐다
심해 속에 가라앉아 어머니 조용히 보라색 공기를 뱉고 있다 고등어가 울고 있다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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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주의 시를 읽는다. 꼭 누구에겐가 속는 기분이다. 지금껏 나는 진지했는데 갑자기 실없는 장난에 참가하는 느낌이다. 이 시인은 시를 가지고 논다. 놀아도 참 잘 논다.
이 시와 같은 경우를 처음 본 것은 아니다. 초현실주의가 그랬다. 예컨대, ‘의식의 흐름’ 기법을 보면 마음속 상태를 있는 그대로 써 내려가는 것이 특징이다. 일관되지 않고 다양하고 복잡한 생각들이 갑자기 툭툭 튀어나오게 된다. 그것은 아무런 논리적 인과관계가 없다. 살바도르 달리나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을 연상해 보라. 얼마나 상쾌한가. 김경주의 시들은 영화나 연극에 가깝다. 그는 연출가의 의도로 시를 쓴다. 그러므로 그의 시들은 시간적 특성보다 공간적 특성을 지닌다.
그의 시는 일상어를 배반한다. 보통의 표현이라면 고등어는 울 수 없다. 그러나 고등어를 먹는 사람은 울 수도 있고, 울음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어느 날 식사를 하기 위해 가족 구성원이 모였다. (어머니는) 가족을 위해 고등어를 구웠다. 모두 모여앉아 고등어를 먹는다. “뼈도 남기지 않고 먹어치”웠기 때문에 “입 안의 비린내를 품고 잠든다”. 이 풍경 또한 비현실적이다. “보라색들이 밥을 먹”는 장면으로 형상화(고등어를 굽다 보면 보라색 연기가 피어오른다)함으로써 비극적 장면을 연출한다. 고독한 도시인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가족들은 고등어구이를 먹었기 때문에 자동으로 고등어구이가 되었다. 지글지글 익은 고등어 모양을 한 어머니는 그 상태에서도 "얘야 널 생각하면 눈을 제대로 못 감겠구나"라면서 나를 걱정한다. 또 다른 고등어구이인 내가 “언어 하나 찾”아 어머니를 위로한다. 방안에 “보라색 공기”가 가득 찼으므로 어머니도 슬프고 나도 슬프다.
고성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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