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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참고서재

[북리뷰] 정신을 갈아가는 길 위에 서다 / 서대선

by 솔 체 2016. 1. 18.

[북리뷰] 정신을 갈아가는 길 위에 서다 / 서대선

<범대순 시집> 산하(山下)

 
비행기로 갈까
기차나 버스로 갈까 하다가
걸어서 가기로 하였다
 
소월로 갈까
두보로 갈까 셰익스피어로 갈까 하다가
걸어서 가기로 하였다
 
예수그리스도로 갈까
공자나 석가모니로 갈까 하다가
걸어서 가기로 하였다
 
걸어서 가기로 하였다
속俗이 하늘인 산하山下를
맨발로 걸어서 가기로 하였다
 
   -산하山下 (전문)
 
 
1965년 시집 <흑인고수 루이의 북>을 펴내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범대순 시인이 시집<산하>를 펴내었다. 영문학을 전공한 범 시인은 언제 만나도 영국신사와 같은 기품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젠틀하고, 조용하며, 꼿꼿하다. 시력 45년을 넘어서는 오랜 기간 동안 전라도 광주라는 지역사회 시인들의 정신적 지주로, 대선배로 우뚝한 범 시인은 지금도 치열하게 정신을 갈아내기 위해 길 위에 서는 노익장이다.   

 
육신의 나이 80이 된 노시인께서 “걸어서” 가겠다고 전언 한다. “비행기로 갈까/기차나 버스로 갈까 하다가/걸어서 가기로 하였다”라며 현실의 안주하거나 편안함을 거부 한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시인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Henry David Thoreau:1817-1862)는 “산책(sauntering)이라는 말의 어원의 근원을 근거로 ”걷는다“는 것은 길의 자력에 발을 맡겨서 상징적으로 성스러운 땅에 도달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보았다. ”이는 마치 강물이 구불구불 흘러가긴 하지만 그렇게 흐르는 동안 줄곧 고집스럽게 바다로 가는 가장 짧은 지름길을 찿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보았다. 그러므로 걷기란 공간 속에서 뿐만 아니라 인간의 내면 속으로 난 길을 찿아 가게 하는 것이다.
 
“소월로 갈까/두보로 갈까 셰익스피어로 갈까 하다가/걸어서 가기로 하였다”라는 구절에 오면 범 시인의 걷기는 단순히 신체적인 운동으로서 만의 걷기가 아님을 보여 준다. 프랑스의 사상가 루소(Rousseau, Jean-Jacques :1712-1778)는 “걷는다”는 것은 “고독한 것이며, 자유의 경험, 관찰과 몽상의 무한한 원천, 뜻하지 않는 만남과 예기치 않은 놀라움이 가득한 길을 즐기는”행위라고 말하였다. 범 시인은 자신의 발과 다리와 전신으로 걸으며 길 위에서 어떤 시류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시세계를 공고히 하기위해 치열하게 시 정신을 갈아가려 한다.   
 
다비드 르 브르통(David Le Breton : 1953-)은 <걷기 예찬>에서 “걷기는 자신을 세계로 열어 놓는 것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찿는다”고 하였다. “걷는다는 것은 침묵을 횡단 하는 것이다. 걸으며 끊임없이 인간이란 실존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에 직면하게 되는”것이다. “예수그리스도로 갈까/공자나 석가모니로 갈까 하다가/걸어서 가기로 하였다”에서 보듯 범 시인은 실존의 근원에 대한 질문을 여러 종교의 교리에 의존하기 보다는 온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 실존에 대한 근원적 질문에 대한 답을 통찰하고자 하는 것이다.
 
“걸어서 가기로 하였다/속俗이 하늘인 산하山下를/맨발로 걸어서 가기로 하였다”라고 전언하는 범 시인은 현실의 편안함에 안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넘쳐나는 시의 이론이나 파벌이나 유행하는 시류에 흔들리지 아니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종교에 기대어 삶을 안위하기 보다는 자신의 온 몸과 정신을 갈아내는 치열한 체험을 통해 존재의 근원에 닿겠다는 것이다.
 
컴퓨터 앞에만 앉으면 하루에도 여러 편에 시가 그냥 줄줄 나온다던 어떤 시인의 말이 섬뜩하였는데, 문학의 길을 가는 도반들께선 범 시인의 전언을 깊이 생각해 보시길 권한다. 육신의 나이 80에도 이처럼 치열하게 정신을 갈아가는 길 위에서 온 몸으로 사물의 본질에 닿으려는 노익장의 모습에 고개가 숙여 진다. 

   범대순 시인은 1930년 전남 광주에서 출생하였다. 고려대학교 영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수학하였다. 1965년 시집 <흑인고수 루이의 북>을 출간 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시집으로 <연가 I II 기타>, <이방에서 노자를 읽다>, <백의 세계를 보는 하나의 눈>, <아름다운 가난>, <세기말 길들이기>, <북창서재>, <파안대소>, <나는 디오니소스의 거시기氣다>등이 있으며, 시론집으로 <백지와 기계의 시학>, <트임의 미학>이 있으며, 에세이집으로 <눈이 내리면 산에 간다>등이 있다, 현 전남대학교 명예교수. [문학들] 값,10,000원.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신구대학교수dsseo@shing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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