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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참고서재

전 지구적 사유_ 하종오 새 시집 『제국』/ 문학동네(펌)

by 솔 체 2016. 2. 4.

전 지구적 사유_ 하종오 새 시집 『제국』/ 문학동네(펌)

 

 

 

   시집 『반대쪽 천국』 이후 줄곧 이주민 노동자와 다문화 가정을 화두 삼아 시세계를 확장해온 중견시인 하종오의 새로운 시집 『제국―諸國 또는 帝國』이 출간되었다. 총 3부 58편의 시가 수록된 이번 시집에서시인은 한국문학의 일국적 틀에서 벗어나 아시아적 타자의 현실을 끌어안았던 이전의 시세계에서 한발 더 나아가, 바야흐로 전 지구적 사유로 뻗어나가는 시적 인식을 선보인다. 시인은 自序에서 "세계의 시민들에게 제국(諸國)은 공존해야 하고 제국(帝國)은 부재해야 한다"고 선언한다. 이 선언은 지금껏 한국문학이 보듬지 못한 전 지구적 빈곤과 불평등의 문제를 다룸과 동시에 전체적 사유를 통한 인간성의 회복에까지 손을 뻗는다.

  

 

      먼 아파트 단지에 어스름이 내렸다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다가

      아들딸이 맛없다고 투정하자

      아빠 엄마는 꾸지람을 하였다

 

      먼 난민촌에 어스름이 내렸다

      배급받은 식빵을 가운데 놓고

      아들딸이 눈치 보며 먼저 뜯어먹고

      아빠 엄마는 외면하였다

 

      지구에 어스름이 내렸다

 

            ―「지구의 어스름」 중에서

 

 

諸國의 공존, 帝國의 부재

 

 

   시집 『반대쪽  천국』 이후 줄곧 이주민 노동자와 다문화 가정을 화두 삼아 시세계를 확장해온 중견시인 하종오의 새로운 시집 『제국―諸國 또는 帝國』이 출간되었다. 총 3부 58편의 시가 수록된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한국문학의 일국적 틀에서 벗어나 아시아적 타자의 현실을 끌어안았던 이전의 시세계에서 한발 더 나아가, 바야흐로 전 지구적 사유로 뻗어나가는 시적 인식을 선보인다. 시인은 自序에서 “세계의 시민들에게 제국(諸國)은 공존해야 하고 제국(帝國)은 부재해야 한다”고 선언한다. 이 선언은 지금껏 한국문학이 보듬지 못한 전 지구적 빈곤과 불평등의 문제를 다룸과 동시에 전체적 사유를 통한 인간성의 회복에까지 손을 뻗는다.

 

 

      한국에서 내 시집들이 나오기까지

      종이를 만들기 위해

      열대우림에서 나무들이 베어졌으니

      지구도 살아남으려고

      스스로 지진을 만들어냈을터

      내 시집들도 묻혀야 하는데

      나는 여전히 이런 시를 쓰고 있다

 

          ―「지구의 사건」 중에서

 

 

   아이티에서 일어난 지진 소식을 들으면서 시인은 그 사고를 자신의 탓으로 돌린다. 종이를 만들기 위해 나무를 베어낸 인류의 과오를 시인이 대표해서 짊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인간을 위한 지구-생명체의 희생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처음엔 물, 흙, 공기, 돌, 광물 따위의 무기물들이었으나 언젠가부터는 나무나 미생물 등의 유기물마저 이에 포함되었으며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동물은 물론이요, 이른바 ‘제3세계’와 아시아 국가들을 포함한 가난한 나라의 인간들마저 희생시키고 있다.

 

 

      베트남 전 참전했던 사나이가

      베트남에 신발공장을 세웠지만

      사업이 잘되어 봉급을 많이 주자

      베트남인들이 가장 들어가고 싶은 회사가 되었고

      사나이는 베트남 전에 참전했던 경력을 숨기지 않았다.

 

           ―「제국(諸國 또는 帝國)의 공장―봉급」중에서

 

 

   베트남 전에 참전했던 사내가 베트남에 신발공장을 세워도, 베트남 사람들은 그의 회사에 들어가고 싶어한다. 한국에서는 큰돈이 아니지만 그들에게는 큰돈이 되는 봉급을 주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자본에 의해 결정되고, 그 법칙 안에서 인권이라든가 생명이라든가 하는 단어들은 허망하게 공중에 흩어진다. 신성한 노동은 동전 몇 닢으로 환산되고, 그들에게 결코 넉넉하다 할 수 없는 휴식시간마저 빼앗아가버린다. 이 심각한 문제를 이른바 저층계급(underclass)만의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저층계급이 점점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부익부 빈익빈(富益富 貧益貧)이라는 단어가 오늘날 우리에게 결코 낯설지 않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것은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어떤 나라에선 적들과 총을 겨누고 싸우고

      어떤 나라에선 반대자들을 감독에 가두고

      어떤 나라에선 권력자들이 재물을 감추지만

      지구에서 먹고살기에 바쁜 생활인들은

      해가 뜬 아침시각에는 해를 쳐다보다가도 외출하고

      달이 뜬 저녁시각에는 달을 쳐다보다가도 귀가한다

 

        ―「지구의 일상사」중에서

 

   우리의 일상이 너무 바쁜 관계로, 우리는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전쟁이나 기아 따위의―에 무감각하다. 아니, 멀리 갈 것도 없이 한 나라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이나 정치적 부조리에도 무감각해진 지 오래다. 세상엔 너무 많은 불의가 벌어지고 있으나 당장 내 먹을거리를 걱정하기에도 바쁘다. 그래서 그 불의를 인간은 “모른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지구는 아는데 “인간만” 모른다. 시인의 이러한 비판이 따끔한 것은 이 시를 읽는 우리가 그만큼 무감해진 탓이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탓이다. 우리는 제국(諸國)의 일원이고 싶지만, 이미 제국(帝國)의 노예다. 하지만 지구는 원환(圓環)이다. 지구는 인간에게 차등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하여 우리에겐 제국(諸國)을 건설할 의무가 있다. 하종오의 총체적인 시적 인식은 우리에게 그 사실을 일깨우고 있다. 이제, 하나의 길이 생겼다. 그 길을 닦고 넓히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다.

 

   한국문학은 비로소 하종오의 시를 통해 본격적으로 그리고 래디컬하게 일국적 관심사로는 포착할 수 없는 아시아적 타자의 현실을 끌어안게 되었다. 『제국―諸國 또는 帝國』을 통해 신자유주의 질서 아래 추구되는 지구화 혹은 세계화가 지닌 문제점을 예각적으로 인식하고,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빈곤의 문제를 발본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문학의 길이 트이게 됐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_고명철(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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