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어제는 비
고운 시 화 1

[스크랩] 늙어 가는 아내에게 / 황지우

by 솔 체 2014. 5. 29.


    늙어가는 아내에게 詩 / 황지우 내가 말했잖아. 정말, 정말, 사랑하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 나 사랑해? 묻질 않어 그냥, 그래. 그냥 살어 그냥 서로를 사는게야 말하지 않고, 확인하려 하지 않고, 그냥 그대 눈에 낀 눈꼽을 훔치거나 그대 옷깃의 솔밥이 뜯어주고 싶게 유난히 커보이는 게야 생각나?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늦가을, 낡은 목조 적산 가옥이 많던 동네의 어둑어둑한 기슭, 높은 축대가 있었고, 흐린 가로등이 있었고 그 너머 잎 내리는 잡목 숲이 있었고 그대의 집, 대문앞에선 이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바람이 불었고 머리카락보다 더 가벼운 젊음을 만나고 들어가는 그대는 내 어깨위의 비듬을 털어 주었지 그런거야, 서로를 오래오래 그냥, 보게하는 거 그리고 내가 많이 아프던 날 그대가 와서 참으로 하기 힘든, 그러나 속에서는 몇 날밤을 잠 못 자고 단련시켰던 뜨거운 말. 저도 형과 같이 그 병에 걸리고 싶어요 그대의 그 말은 에탐부톨과 스트렙토마이신을 한알 한알 들어내고 적갈색의 빈 병을 환하게 했었지 아, 그곳은 비어 있는 만큼 그대 마음이었지 너무나 벅차 그 말을 사용할 수 조차 없게 하는 그 사랑은 아픔을 낫게 하기보다는, 정신없이.. 아픔을 함께 앓고 싶어하는 것임을 한밤, 약병을 쥐고 울어버린 나는 알았지 그래서, 그래서, 내가 살아나야 할 이유가 된 그대는 차츰 내가 살아갈 미래와 교대 되었고, 이제는 세월이라고 불러도 될 기간을 우리는 함께 통과했다 살았다는 말이 온갖 경력의 주름을 늘리는 일이듯 세월은 넥타이를 여며주는 그대 손 끝에 역력하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아침 머리맡에 떨어진 그대 머리카락을 침묻힌 손으로 짚어내는 일이 아니라 그대와 더불어, 최선을 다해 늙는 일이리라 우리가 그렇게 잘 늙은 다음 힘없는 소리로, 임자, 우리 괜찮았지? 라고 말할 수 있을 때, 그때나 가서 그대를 사랑한다는 말은... 그때나 가서 할 수 있는 말일 거야...
    메모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