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인의 「바짝 붙어서다」평설 / 홍일표
바짝 붙어서다
김사인
굽은 허리가 신문지를 모으고 상자를 접어 묶는다 몸뻬는 졸아든 팔순을 담기에 많이 헐겁다 승용차가 골목 안으로 들어오자 벽에 바짝 붙어 선다 유일한 혈육인양 작은 밀차를 꼭 잡고
저 고독한 바짝 붙어서기 더러운 시멘트벽에 거미처럼 수조 바닥의 늙은 가오리처럼 회색벽에 낮고 낮은 저 바짝 붙어서기
차가 지나고 나면 구겨졌던 종이같이 할머니는 천천히 다시 펴진다 밀차의 바퀴 두개가 어린 염소처럼 발꿈치를 졸졸 따라간다
늦밤에 그 방에 켜질 헌 삼성테레비를 생각하면 기운 싱크대와 냄비들 그 앞에 서있을 굽은 허리를 생각하면 목이 메인다 방 한 구석 힘주어 꼭 짜놓은 걸레를 생각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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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대한 따듯한 시선
가끔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또는 길을 걸으면서 옆을 스치는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세상에 왔다가 단 한 번만 보고 끝나고 마는 인연, 이승에서 두 번 다시 보지 못할 사람들이 대부분이지요. 『입보리행론』은 말합니다. “수천의 생을 반복한다 해도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만난다는 것은 드문 일이다. ‘지금’ 후회 없이 사랑하라. 사랑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오늘 저는 할머니 한 분을 소개하려 합니다. 김사인 시인의 따듯한 눈길이 찾아낸 독거노인입니다. 조용히 눈으로 읽어 보면 가슴 한 구석이 뜨거워집니다. 팔순의 허리 굽은 할머니가 신문지와 종이상자를 작은 밀차에 싣고 좁은 골목을 지나다가 승용차를 피해 비켜섭니다. 거미처럼, 늙은 가오리처럼 ‘고독한 바짝 붙어서기’를 하지요. 우리가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하루에 몇 천원의 돈을 벌기 위해서 혼자 사는 노인은 종이를 줍습니다. 기운이 없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상자를 접어 들어 올립니다. 고독하고 쓸쓸한 삶의 풍경입니다. 시인이 그걸 놓칠 리가 없지요. 시인의 예리한 촉수에 힘없는 독거노인의 애잔한 삶의 그늘이 다가온 거지요. 구겨졌던 할머니의 몸이 천천히 다시 펴집니다. 버려진 유모차를 개조해 만든 작은 밀차의 바퀴 두 개가 갑자기 어린 염소가 되어 독자의 눈앞으로 다가오네요. 발꿈치를 졸졸 따라가는 새끼 염소, 시골 어느 한가한 골목에서 봄직한 풍경입니다. 늦은 밤 할머니는 몇 천원의 돈을 받아들고 허름한 단칸방으로 돌아옵니다. 아무도 맞아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헌 텔레비전, 기운 싱크대와 냄비들이 전부이지요. 할머니의 굽은 허리가, 방 한 구석 힘주어 짜놓은 걸레가 시인의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늙고 초라한 노인, 그 분은 삭정이처럼 쓸쓸한 뒷방의 노모요 고목둥치 같은 우리들의 먼 미래이겠지요.
홍일표 (문화저널21 편집위원.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전문지 『시로 여는 세상』 주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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