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수, 「집 근처 학교 운동장」 감상 / 김기택
집 근처 학교 운동장
문인수
집 근처 학교 운동장이다.
달빛이 가장 널리 전개되고 있다.
사람의 참 작은 몸에서 이렇듯 무진장,
무진장한 마음이 흘러나와 번지다니
막막하게 번진 이 달빛 사막에
우듬지를 잘라낸 히말라야시다의 캄캄한 그림자가
캄캄하지만 순하게 엎드리고 있다. 있는 힘껏
이별을 하고
내가 올라타는 것은 전부 낙타인 것 같다.
저 갈 길 이미 눈물로 다 잡아먹은 뒤
배밀이, 배밀이 하는 배 같다.
그러니까 운동장엔 둥근 트랙,
흰 궤도가 있다.
한쪽 얼굴이 자꾸 삐딱하게 닳는 달,
저 수척한 달이
너에게로 하염없이 건너갈 수 있는 데가
집 근처 학교 운동장이다.
—시집『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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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수 / 1945년 경북 성주에서 태어났으며, 1985년 『심상』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 시집 『뿔』『동강의 높은 새』『쉬!』『배꼽』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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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돈을 들여 멀리 가지 않아도 하늘만한 넓이와 깊이를 가진 곳은 주변에 얼마든지 있지요. 집 근처에 있어서 가끔 어슬렁거리기도 하고 초등학교 때 했던 맨손 체조도 해보는 학교운동장 같은 곳.
넓은 곳으로 오니 작은 몸도 저절로 학교운동장 넓이만큼 확장되네요. 몸이 넓어지니 달빛이 제 몸에서 흘러나와 무진장 번지기도 하고, 온갖 풍파를 다 겪은 후에 겸손해져서 망망대해를 아기처럼 배밀이하는 내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둥근 트랙이 한 눈에 보이기도 하네요.
그러니 벽으로 막힌 좁은 공간에서 나와 사방이 탁 트인 곳으로 가 볼 일입니다. 그동안 함부로 막 대했던 마음을 넓은 곳으로 데리고 나와 한 번도 막힌 적이 없는 바람도 쏘여주고 하늘까지 기지개도 켜게 해주고 달과 눈도 맞춰줄 일입니다.
김기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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