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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참고서재

문인수, 「집 근처 학교 운동장」 감상 / 김기택

by 솔 체 2017. 8. 10.

 

문인수, 「집 근처 학교 운동장」 감상 / 김기택

 

 

집 근처 학교 운동장

 

  문인수

 

 

집 근처 학교 운동장이다.

달빛이 가장 널리 전개되고 있다.

사람의 참 작은 몸에서 이렇듯 무진장,

무진장한 마음이 흘러나와 번지다니

막막하게 번진 이 달빛 사막에

우듬지를 잘라낸 히말라야시다의 캄캄한 그림자가

캄캄하지만 순하게 엎드리고 있다. 있는 힘껏

이별을 하고

내가 올라타는 것은 전부 낙타인 것 같다.

저 갈 길 이미 눈물로 다 잡아먹은 뒤

배밀이, 배밀이 하는 배 같다.

그러니까 운동장엔 둥근 트랙,

흰 궤도가 있다.

한쪽 얼굴이 자꾸 삐딱하게 닳는 달,

저 수척한 달이

너에게로 하염없이 건너갈 수 있는 데가

집 근처 학교 운동장이다. 

 

 

 

         —시집『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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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수 / 1945년 경북 성주에서 태어났으며, 1985년 『심상』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 시집 『뿔』『동강의 높은 새』『쉬!』『배꼽』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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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과 돈을 들여 멀리 가지 않아도 하늘만한 넓이와 깊이를 가진 곳은 주변에 얼마든지 있지요. 집 근처에 있어서 가끔 어슬렁거리기도 하고 초등학교 때 했던 맨손 체조도 해보는 학교운동장 같은 곳.

   넓은 곳으로 오니 작은 몸도 저절로 학교운동장 넓이만큼 확장되네요. 몸이 넓어지니 달빛이 제 몸에서 흘러나와 무진장 번지기도 하고, 온갖 풍파를 다 겪은 후에 겸손해져서 망망대해를 아기처럼 배밀이하는 내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둥근 트랙이 한 눈에 보이기도 하네요.

   그러니 벽으로 막힌 좁은 공간에서 나와 사방이 탁 트인 곳으로 가 볼 일입니다. 그동안 함부로 막 대했던 마음을 넓은 곳으로 데리고 나와 한 번도 막힌 적이 없는 바람도 쏘여주고 하늘까지 기지개도 켜게 해주고 달과 눈도 맞춰줄 일입니다.

 

김기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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