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복의 「어떤 풍경은」감상 / 이진명
어떤 풍경은
이성복 (1952~ )
어떤 풍경은 늦게 먹은 점심처럼
그렇게 우리 안에 있다
주먹으로 누르고 손가락으로 쑤셔도
내려가지 않는 풍경,
밭 갈고 난 암소의 턱에서
게거품처럼 흐르는 풍경,
달리는 말 등에서, 뱃가죽에서
뿜어나오는 안개 같은 풍경,
묶인 굴비 일가족이 이빨 보이며
노래자랑하는 풍경,
어떤 밤에는 젊으실 적 어머니
봉곳한 흰 밥과 구운 꽁치를
소반에 들고 들어올 것도 같지만,
또 어떤 대낮에는 ‘시집 못 간
미스 돼지’라는 돼지갈비집 앞에서
도무지 사람이라는 게 부끄러워지는 풍경,
갈비 두 대와 된장찌개로 배를 채우고
녹말 이쑤시개 혀끝으로 녹여도 보는 풍경,
그러나 또 어떤 풍경은 전화 코드 뽑고
한 삼십 분 졸고 나면 흔적이 없다
—시집 『아, 입이 없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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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와 나를 읽는 장전된 의식의 열도가 으스스하다. 세계와 나의 비루, 아무것도 용서하고 싶지 않은 냉정. 가히 할퀴는 수준으로 비루한 바깥과 안의 풍경을 긁는다. 먹은 점심의 구토처럼. ‘주먹으로 누르고 손가락으로 쑤셔도/내려가지 않는 풍경’이 우리의 배경이며 ‘게거품처럼’ ‘묶인 굴비’ 주제에 ‘이빨 보이며/노래자랑하는’ 이것이 우리의 현주소라는 불편하고 첨예한 인식. 대낮 돼지갈비집에서 배를 채우고는 이쑤시개질로 한 생을 삼는 나날의 소멸과 느끼함, 비루를 짐짓 품어 안는 듯하다가 마지막 ‘한 삼십 분 졸고 나면’ 그 깨어 있던 모든 풍경, 열정도 냉정도 비루도 흔적이 없이 가버렸다고 더 크게 입 벌린 삶의 허망을 말한다.
이진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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