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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 은 시 와 글

성선경 / 장진주사(將進酒辭)

by 솔 체 2017. 10. 23.

장진주사(將進酒辭)

성선경



살구꽃 피면 한 잔 하고 복숭아꽃 피면 한 잔 하고 애잔하기가 첫사랑 옷자락 같은 진달래 피면 한 잔 하고 명자꽃 피면 이사간 옆집 명자 생각난다고 한 잔 하고 세모시 적삼에 연적 같은 저 젖 봐라 목련이 핀다고 한 잔 하고 진다고 한 잔 하고 삼백예순날의 기다림 끝에 영랑의 모란이 진다고 한 잔하고 남도의 뱃사공 입맛에 도다리 맛들면 한 잔하고 봄 다 갔다고 한 잔 하고 여름 온다 한 잔 하고 초복 다름한다고 한 잔 하고 삼복 지난다고 한 잔 하고 국화꽃 피면 한 잔 하고 기울고 스러짐이 제 마음 같다고 한가위 달 보고 한 잔 하고 단풍 보러 간다고 한 잔 하고 개천은 개벽이라 하늘 열린다고 한 잔 하고 입동 소설에 첫눈 온다고 한 잔 하고 아직도 나는 젊다고 한 잔 하고 아랫목에 뒹굴다 옛시를 읽으며 한 잔 하고 신명 대접한다고 한 잔 하고 나이 한 살 더 먹었다고 한 잔 하고 또 한 잔 하고
그런데

그런데
우리 이렇게 상갓집에서나 만나야 쓰겠냐고
선배님께 꾸중들으며 한 잔 하고

아직도 꽃 보면 반갑고
잔 잡으니 웃음 난다고
반 너머 기울어진 절름발이 하현달.



(서정과현실 2004 상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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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선경 1960년 경남 창녕 출생. 198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널 뛰는 직녀에게』『옛사랑을 읽다』『서른 살의 박봉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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