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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참고서재

장석주의 「새」감상 / 권혁웅

by 솔 체 2018. 1. 23.

장석주의 「새」감상 / 권혁웅

 

 

새  

 


   장석주 (1954~ )

 




 








새, 어떤 규율도 따르지 않는 무리.


새, 허공의 영재(英才)들.


새, 깃털 붙인 질항아리.


새, 작고 가벼운 혈액보관함.


새, 고양이와 바람 사이의 사생아.


새, 공중을 오가는 작은 범선.


새, 지구의 중력장을 망가뜨린 난봉꾼.


새, 떠돌이 풍각쟁이.


새, 살찐 자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가벼운 육체.


새, 뼛속까지 비운 유목민들.


새, 똥오줌 아무 데나 싸갈기는 후레자식.


새, 국민건강의료보험 미불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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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의 행들을 다르게 번역하면 이렇다. 새, 규율을 물 말아먹은 자. 전깃줄에 일렬횡대로 앉아 있는 범생들. 깨지기 쉬운 질그릇. 누군가 던진 혈액봉투. 자식 잡아먹는 애비의 바로 그 자식. 두 개의 작은 돛을 편 배. 하늘로 되던진 뉴턴의 사과. 떠돌이 악사. 거식증 환자. 골다공증 환자. 날아다니는 변기통.

   그런데 마지막 행은 번역되지 않는다. 저 난감한 문장을 들여다보노라면, 불현듯 새가 시인의 별명임을 알게 된다. 돈을 안 냈으니 의료보험 혜택을 못 받는 게 아니다. 그에게는 돈도 없고 혜택도 없는 거다. 최저생계비 저 아래 사는 시인이 아직도 많다. 그에게 지로용지와 독촉장과 최고장을 보내지 말라.

 


권혁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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