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인의 「천지간」감상 / 권혁웅
천지간
김명인 (1946~ )
저녁이 와서 하는 일이란
천지간에 어둠을 깔아놓는 일
그걸 거두려고 이튿날의 아침 해가 솟아오르기까지
밤은 밤대로 저를 지키려고 사방을 꽉 잠가둔다
여름밤은 너무 짧아 수평선 채 잠그지 못해
두 사내가 빠져나와 한밤의 모래톱에 마주 앉았다
이봐, 할 말이 산더미처럼 쌓였어
부려놓으면 바다가 다 메워질 거야
그럴 테지, 사방을 빼곡히 채운 이 어둠 좀 봐
망연해서 도무지 실마릴 몰라
두런거리는 말소리에 겹쳐
밤새도록 철썩거리며 파도가 오고
그래서 여름밤 더욱 짧다
어느새 아침 해가 솟아
두 사람을 해안선 이쪽저쪽으로 갈라놓는다
그 경계인 듯 파도가
다시 하루를 구기며 허옇게 부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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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신화로 바꾸는 시인의 손길을 신필(神筆)이라 불러도 좋겠다. 일필휘지로 그린 그림 속에, 세상에서 제일 큰 사내 둘이 마주 앉았다. 한 사내의 이름은 ‘하늘’이고 다른 한 사내의 이름은 ‘땅’이다. ‘수평선’이 하늘의 경계이고 ‘해안선’이 땅의 경계이므로, 둘 사이에는 바다가 있다. 그들의 “두런거리는 말소리”가 파도소리다. 대화도 이쯤 되면 신들의 대화라 할 만하다. 곧 여름이 될 테고, 전국의 해수욕장에는 두 사내가 모습을 드러내겠지. 바다를 끌어다 한잔 나누는 저 천기누설의 현장에 나도 가보고 싶다.
권혁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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