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 앞 능소화
이현승
1
이를테면 제 집 앞 뜰에 능소화를 심은 사람의 마음이 그러했을 것이다. 여름날에, 우리는 후두둑 지는 소나기를 피해 어느 집 담장 아래서 다리쉼을 하고, 모든 적막을 뚫고 한바탕의 소요가 휩쓸고 갈 때, 어사화 같은 능소화 꽃 휘몰아쳐지고 있을 때,
그랬을 것이다. 우리는 그 집의 좋은 향기에 가만히 코를 맡기고 잠시 즐겁다.
능소화 꽃 휘어진 줄기 흔들리면,
나는 알고 있다. 방금 내가 꿈처럼, 혹 무엇처럼 잠시 다녀온 듯도 한 세상을.
2
말걸어 오지 않는 세상을 향한 말걸기.
언뜻언뜻 바람을 틈타고 와
확, 뿜어져 나오는 향기란
아무것도 예비할 수 없었던 도난사고처럼
툭, 어깨 치며 떠난 자에게서 후발되는 것.
뒤숭숭한 꿈자리처럼
파편적으로만 나타나는 기억 속에서
징후로만 읽혀지는 것.
그러나, 감추어진 것을 향한 나의 짐작은 두렵다.
다 익었다는 것 속엔 무언가가 감추어져 있다.
열매도 없는 화초의 지독한 향기.
급소를 중심으로 썩어가는 맹독성
혼기 지난 여인처럼
꽃은 향기 속에 부패의 경고를 담는다.
모든 향기의 끝에는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
―문예중앙 신인상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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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승 1973년 전남 광양 출생. 1996년 전남일보 신춘문예 당선. 2002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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