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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제는 비
기억 속 명시들

비의 이미지 (외4편)/장만영

by 솔 체 2019. 7. 6.

비의 이미지

장 만 영



병든 하늘이 찬 비를 뿌려……
장미 가지 부러지고
가슴에 그리던
아름다운 무지개마저 사라졌다.

나의 '소년'은 어디로 갔느뇨, 비애를 지닌 채로

이 오늘밤은
창을 치는 빗소리가
나의 동해(童骸)를 넣은 검은 관에
못을 박는 쇠망치 소리로
그렇게 자꾸 들린다.……

마음아, 너는 상복을 입고
쓸쓸히, 진정 쓸쓸히 누워 있을
그 어느 바닷가의 무덤이나 찾아가렴.

 

[조광]1940,2

 

湖水
장만영


더듬더듬 갈대밭을 지나 湖畔에 나서니
불란서 旗폭처럼 곱게 퍼진 저녁 하늘.

湖水엔 배도 없고 물새도 없고
찰삭찰삭 모래 씹는 물결소리 고요하다.

외로운 마음 갈대 잎 꺾어 불며 돌아가나니
밤이 별들을 데리고 물 위로 조용히 온다.

―{신인문학}, 1936. 3.



달·포도·잎사귀
장만영


順伊 벌레 우는 古風한 뜰에
달빛이 밀물처럼 밀려 왔구나.

달은 나의 뜰에 고요히 앉아 있다.
달은 과일보다 향그럽다.

동해 바다 물처럼
푸른
가을


葡萄는 달빛이 스며 고웁다.
葡萄는 달빛을 머금고 익는다.

順伊 포도 넝쿨 밑에 어린 잎새들이
달빛에 젖어 호젓하구나.
―{시건설} 창간호, 1936. 12.



장만영


順伊 뒷산에 두견이 노래하는 사월 달이면
비는 새파란 잔디를 밟으며 온다.

비는 눈이 水晶처럼 맑다.
비는 하아얀 진주 목걸이를 자랑한다.

비는 수양버들 그늘에서
한 종일 銀色 레이스를 짜고 있다.

비는 대낮에도 나를 키스한다.
비는 입술이 함숙 딸기 물에 젖어 있다.

비는 고요한 노래를 불러
벚 향기 풍기는 황혼을 데려 온다.

비는 어디서 자는지를 말하지 않는다.
順伊 우리가 촛불을 밝히고 마주 앉을 때

비는 밤 깊도록 창 밖에서 종알거리다가
이윽고 아침이면 어디론지 가버린다.

―{시건설}, 창간호, 1936. 12.



貞洞 골목

장만영



얼마나 우쭐대며 다녔었냐,
이 골목 貞洞 길은.
헤어진 교복을 입었지만
배움만이 나에겐 자랑이었다.

도서관 한 구석 침침한 속에서
온종일 글을 읽다
돌아오는 황혼이면
무수한 피아노 소리
피아노 소리 분수와 같이 눈부시더라.

그 무렵
나에겐 사랑하는 소녀 하나 없었건만
어딘가 내 아내 될 사람이 꼭 있을 것 같아
음악 소리에 젖는 가슴 위에
희망은 보름달처럼 둥긋이 떠올랐다.

그 후 이십 년
커다란 老木이 서 있는 이 골목
古色蒼然한 긴 기와 담은
먼지 속에 예대로 인데
지난날의 소녀들은 어디로 갔을까,
오늘은 그 피아노 소리조차 들을 길 없구나.

―{문예}, 1949. 10.

 

 

                                                                                    

 

 1914. 1. 25 황해 연백~1977.

호는 초애(草涯). 아버지 완식(完植)과 어머니 김숙자(金淑子) 사이에서 태어나 1927년 황해도 배천공립보통학교를 졸업했다. 1932년 경성제2고등보통학교(지금의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34년 일본으로 건너가 미자키 영어학교[三峻英語學校] 고등과에 입학해 2년 다녔으나 부모의 뜻에 따라 그만두고 귀국했다. 김억과는 두터운 사제관계를 맺었으며, 신석정·오장환·서정주 등과 교류했다. 1944년 아버지가 물려준 배천온천을 운영하다가 1948년 출판사 산호장을 차렸고, 6·25전쟁 때는 종군작가단에 가담한 문인들과 어울려 〈전선문학〉을 펴냈다. 1954년 〈서울신문〉 출판국장 및 〈신천지〉·〈신문예〉 등의 주간을 맡았다. 1959년 한국시인협회 부회장과 1966년 회장을 지냈으며, 1968년 신시60년기념사업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1932년 도쿄[東京]에 유학하고 있을 무렵 김억의 추천으로 〈동광〉에 시 〈봄 노래〉가 발표되어 문단에 나왔다. 모더니즘의 영향이 짙게 느껴지는 시를 발표했으나, 당시의 모더니즘 계열의 시인들이 도시적·이국적 서정을 노래하고 있는 데 반해 그는 농촌과 자연을 소재로 동심의 세계를 즐겨 다룬 점이 특징적이다. 1937년에 펴낸 첫 시집 〈양 羊〉 이후 시집 〈축제〉(1939)·〈유년송 幼年訟〉(1948) 등에 실린 시들은 이러한 동심의 세계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것들이다. 이중 〈아직도 거문고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가을 아침 풍경〉·〈달·포도·잎사귀〉 등이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시는 전원적 소재와 감각적 묘사에서 신석정과 비슷하고, 또 시적 대상을 이미지화한 점에서 김광균 등과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제4시집 〈밤의 서정〉(1956)을 펴낸 이후에는 동심의 세계보다 각박한 현실에서의 체험을 주로 읊었다. 그밖의 시집으로 〈저녁 종소리〉(1957)·〈장만영시집〉(1964)·〈어느 날의 소녀에게〉(197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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