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어제는 비
기억 속 명시들

술잔 속의 밤 / 고원

by 솔 체 2019. 7. 25.

술잔 속의 밤

고원



다들 갔다.
다른 누가, 혹은 내가 쓰던
빈 술잔 깊숙이
어둠이 선뜻 들어와서는
연기로 변한다.

사방에 의자들이 펼쳐 있고,
술잔에서 밤이 나와
의자 새를 기어다니다가
꼭 달라붙은 채
내 등 위에 올라선다.

걸어다니는 저 병들을 헤치며
수학을 하는 환상의 소녀가
가까이 온다 ― 부풀면서,
소녀는 내 무릎 위에 앉아
빈 잔을 입으로 분다.

벽에 붙은, 산 그림
<싸바트의 마녀들>의
배와 엉덩이처럼 이제
생식력 있는 모든 공허가
부풀어오르고, 쌓여 오른다.

 


'기억 속 명시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순애(純愛) / 김영태   (0) 2019.07.25
타관(他關)의 햇살 / 홍윤숙   (0) 2019.07.25
또 하루 / 박태진   (0) 2019.07.25
아! 신화(神話)같이 다비데군(群)들 /신동문   (0) 2019.07.25
저녁별 / 김종길  (0) 2019.07.2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