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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 명시들

연가(戀歌) 9 /마종기

by 솔 체 2019. 7. 25.

연가(戀歌) 9

마종기



1
전송하면서
살고 싶네.

죽은 친구는 조용히 찾아와
봄날의 물 속에서
귓속말로 속살거리지,
죽고 사는 것은 물소리 같다.

그럴까, 봄날도 벌써 어둡고
그 친구들, 허전한 웃음 끝을
몰래 배우네.

2
의학교(醫學校)에 다니던 5월에, 시체(屍體)들 즐비한 해부 교실(解剖敎室)에서 밤샘을 한 어두운 새벽녘에, 나는 순진(純眞)한 사랑을 고백(告白)한 적이 있네. 희미한 전구(電球)와 희미한 기억(記憶)과 시체(屍體)들 속살거리는 속에서, 우리는 인육(人肉) 묻은 가운을 입은 채 포옹(抱擁)을 한 적이 있네.

그 일 년이 가시기 전에 시체(屍體)는 부스러지고 사랑도 헤어져, 나는 자라지도 않는 나이를 먹으면서 아, 실내(室內)의 방황(彷徨), 실내(室內)의 정적(靜寂)을 익히면서 진보(進步)하였었네.

홍차(紅茶)를 마시고 싶다던 앳된 환자(患者)는, 다음날엔 물 속에 잘 녹은 소리가 되고, 나는 높은 돌담 위에 피는 백목련(白木蓮)을 기다리게 되었네. 꽃은 이상하게 해마다 피고 멀리 서서도 나는 기억(記憶)할 것이 있었네.

3
친구가 있다면
항상 물어 보았지.

무심히 걸어가는 뒷모습
하루종일 시달린 저녁의 뜻을.

우연히 잠 깨인 밤에는
내가 소유(所有)한 빈 목록표(目錄表)를,
적적(寂寂)한 밤이 부르는 소리를.

우리의 내부(內部)는
깊이 물 속에 가라앉고

많이 기대하던 웃음,
뛰어가는 숨가쁨을
물어 보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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