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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 명시들

꽃과 의미(意味) / 주문돈

by 솔 체 2019. 8. 13.

꽃과 의미(意味)

주문돈




(1)
두꺼비가 꽃비 속에 엎드려서
참회를 한다.

거침없이 꽃잎은 흘러내려 지옥의 살벌한 계절에서
따스운 것을 소생시킨다. 그 칠흑의 하늘에서는 정지했던 해가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찬란한 빛을 투사(投射)한다.

언제나 종말같은 진실한 빛깔로 살아나가는
꽃이어서
죽은 그 시체도 타는 것이구나.

(2)
꽃밭은
어느 큰 흐름의 단면(斷面).
하늘의 뭇 용태(容態)를 진술하고 있는
꽃들은 수런거리며 속삭이며
제각금 탑의 정부(頂部)를 이루어가고-.

휘어 휘어 뻗어간 꽃가지는 어느 바다에
적시우고 있는가.

아지랑이와도 같이 어른대고 무지개 빛으로 황홀해 보이는
맑은 것들이 뭉어리로 뭉어리로 엉키어 있는
꽃밭을 보노라니.

아 신라(新羅). 신라.
그 마음 위에 감돌던 꽃구름은 어디에 가 다시 구현될 날을
모색하며 있는가.

꽃은 조심스럽게
벼랑을 맞받으며 쉬임 없이 피고 영토를 확장하며 있다.

내년이면 나올 다른
꽃가지가 뻗어 적실 바다는
지금에도 기약(期約)으로 출렁이고 있다.

너울너울
화창히 떨어져 내린 꽃잎은 꽃보다 붉은
생명의 비인 부분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 195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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