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시인세계> 신인작품 공모 당선작
어린 송아지가 온다 (외 4편)
서 효 인
1. 약간 장애인 괜찮음 어리고
순종적인 여자 있음
2. 880만원 현지에 회사가 있어
믿을 수 있고 저렴함
바다를 건너 어린 송아지가 왔다
메콩 강의 짙은 흐름을 기억하는 눈이
고향색 하늘을 보고 구름처럼 흔들렸다
강물에 흔들리는 수상가옥의 낮잠을 밀어내는
고속도로의 좁은 평야가 계속되고 있었다
송아지의 부드러운 육질을 바라보는 남자의
농협 하나로 마트산 치열이 바스락거렸다
어린 송아지가 부뚜막에 앉아 울고 있다
맹획을 잡고 놓아주던 누구처럼
불을 지르고 처녀를 낚던 우리처럼
점잖게 사진을 찍고 절을 올리고서
어린 암소 한 마리 잡아
워이야 이년아 우리말을 가르치는데
문득 엉덩이가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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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의 재개발
백 원만 하던 너, 아직도 여기 있구나
모교 앞, 문방구는 이름이 바뀌고
주인 여자도 졸업식마냥 늙었는데
오래된 오락기의 먼지 되어 앉아 있구나
백 원만 하던 너, 아직도 웃는구나
장마처럼 침을 흘리며 사뿐히 웃는데
모교 앞, 재개발된 젊은이가 너를 본다
백 원만 하는 너
몰라보는구나 나를
국민체조와 국기에 대한 맹세를 콧물로 흘리던 교문에서
미친년이라고 아무리 놀려도 백 원만 백 원만 했다 넌
기억나니 넌, 고등학교 오빠들이 아랫도리에 손을 찌르며
오락하듯 백 원을 넣고 흔들 때도 장마처럼 침을 흘렸다 넌
백 원만 하던 너, 아직도 여기에
몇 떼의 구름이 지나가도록 섰구나
촌지처럼 교실은 시끄러운데
아직도 웃는구나 동전은 소리 내며 웃는데
너는 소리도 없이 진짜로 누가 미쳤냐고
백 원만 백 원만 하며 묻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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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가게 아가씨는 누구를 닮았는가
우리는 사실
몇 개의 자본이 쫀득쫀득 엉킨
피자를 먹으려 했을 뿐이다
저기 유리가면을 쓴 여자 온다
무릎을 굽히고 허리를 낮춰 삐걱삐걱
유리 가면은 웃고 있다
일단 우리는
여자의 옆통수를 떼어 먹는다
어두육미의 전통적 지혜를 발휘하야,
쪽진 앞 머리칼 몇 가닥 아닥아닥
그리고 우리는
여자의 눈을 빨아 먹는다
지배인과 샐러드 바의 눈치를 보던 눈은
심한 운동과 경련으로 부어 보들보들
이윽고 우리는
여자의 코를 집어 먹는다
하루 종일 지긋지긋 쫓아오는
생리통 같은 치즈냄새로 무장된 코
노란 소스의 짭조름하고 고소한 맛
이어서 우리는
여자의 가슴을 핥아먹는다.
환희의 순간은 마지막 조각에 있다
단정한 유니폼을 확 잡는다 단추가 투두두둑
상큼한 연어 속살에 생과일 소스가 유두에서 탱글탱글
이제 여자는 발가락만 남아 꼼샥꼼샥
비참하게 남겨진 피자의 빵 쪼가리처럼
쭈그려 앉아 가면을 벗는다
거기에 토핑되는 얼굴
낯이 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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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을 자르는 가위의 소리 들었네
형이 죽는 건 다행이야
형이 죽는 건 당연하지
형이 죽는 건 말씀이지
두 개의 영혼을 가진 내가
형을 빨아먹으며 자란 내가
더럽고 누추하고 섹시하게
형 몫으로 살아가고 있어
형의 심장은 잘게 썰려
물수제비 타고 날아가
달의 뒷면에 박히는데
대못처럼 박힌 내 영혼
언제나 데려가시려는지
두 개의 영혼을 가진 내가
형을 씹어 먹으며 자란 내가
무로 존재하던 그 시간에
죽어버린 형의 병원 시트에
마취액처럼 흐르던 자궁들
나는 보았네 가위의 소리
형이 죽고야 나는 안심
형이 죽고야 나는 히죽
형이 죽고야 나는 나는
나는 갈테야 못처럼 박히러
보름하고 열흘 세를 놓은
내 자리 내놓으시고
어서 꺼져주시길
나는 나는 바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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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포, 고독한 여행을 떠나다
다카포(da capo)
그를 찾지 말 것
영원한 장마비 속에서 그는
마꼰도*로 여행을 떠났다
성경처럼 비가 오더니 황소머리와 돼지꼬리가 흙탕물 속에서 뒹굴고
차라리 방주를 타고 도망가는 노아처럼 간택받고 싶어라 별똥별처럼 거
대한 폭포를 떨어지는 방주를 타고 인류의 마지막 사망자가 되고 싶어
라 그러나 마지막은 다 카포,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서 연주하라는 뜻으
로 다 갚고, 포커 하우스에서 마지막 담배를 피우던 아버지의 앞니라는
뜻으로 다 울고, 식인개미에게 끌려 나가는 신생아의 몽고반점처럼 시
작과 끝은 근친상간 장마에는 소고기맛 비가 와서 장조림처럼 묻히는
사람과 살림과 삶들이 뒤엉켜 슬픈 덮밥이 되고 덮밥을 먹는 700 상자들
이 수많은 방주를 타고 일광욕을 즐기는 밤,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연주
를 하려는 빗줄기들이 하수구에 모여 종량제 봉투에게 건네는 이야기를
듣고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을 갔다. 황소머리와 돼지꼬리가 영원한 빗속
에서 한 몸이 되어 실룩실룩, 흙탕물 장조림들을 치고 지나가더라는 것
을.
* 가르시아 마르케스 『백 년의 고독』에서 배경이 되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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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사평
주제 의식이 살아 있다
김 종 해 | 시인
제8회 《시인세계》 신인작품 응모작은 우편, 이메일 응모가 107명, 온라인 응모가 102명 합해서 모두 209명― 지난번보다 응모 숫자가 늘었다.
예심을 거쳐 최종심으로 넘어온 숫자는 14명이며, 이 가운데 마지막까지 경합한 작품은 우편 응모작 송상의 「성금요일 13번 국도」(외 9편)와 온라인 응모작 김산의 「광狂 마우스」(외 10편), 이현의 「국제여관」(외 9편), 서효인의 「어린 송아지가 온다」(외 10편) 이상 네 사람이었다.
이 네 사람 가운데 우편 응모작으로는 송상 한 사람만 남았고 나머지 김산, 이현, 서효인 세 사람은 온라인 응모작으로 투고해서 온라인 투고의 강세를 보여준 것도 신세대 투고 방법의 특이한 점으로 지적되었다.
신인작품을 읽을 때마다 심사위원이 찾는 것은 매끄럽게 잘 짜여진 모범 답안지가 아니다. 투박하고 거칠지만, 제 목소리가 담긴 화법이 있는지, 자기 것이라 할 수 있는 개성과 컬러가 언어와 행간 속에 담겨 있는지를 본다.
송상의 「성금요일 13번 국도」는 잘 짜여진, 일정한 수준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자기 삶이 담긴 목소리와 화법을 담아내는 것이 부족해 보였다.
김산의 「광狂 마우스」와 「더듬거리는 교회」는 가능성이 엿보이는 작품. 그러나 투고된 타 작품들이 이완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이현의 「국제여관」(외 9편)과 서효인의 「어린 송아지가 온다」(외 10편)를 두고 심사위원들은 오랜 시간 ‘새로운 시인’의 탄생을 놓고 뜸을 들였다. 심사장소를 바꿔가며 논의를 거듭했다. 당선작이 될 수 있는 5편을 각각 가려놓고, 이들 작품에 대한 성취도와 결점을 낱낱이 짚어 갔다.
이현의 경우, 언어 표현의 밀도와 적확성이 떨어지는 흠을 보였고, 서효인의 경우도 대동소이. 그러나 주제의식이 살아 있고, 제 목소리가 실려 있었다. 서효인의 「어린 송아지가 온다」는 우리 농촌 사회가 맞닥뜨린 현실, 약소 민족과의 결혼의 연민과 갈등을 시로 그려내고 있다. “부뚜막에 앉아 울고” 있는 어린 송아지. 그러나 그녀는 동남아에서 온 어린 신부이다.
시인의 연민과 우수가 시로서 사회성을 담아내고 있다. 「광기의 재개발」과 같은 작품에서도 막힘이 없는 역발상逆發想의 페이소스를 보여준다.
새로운 시인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 서효인을 당선시인으로 뽑았다.
독창적인 발성법을 갖고 있는가
김 혜 순 | 시인
예심에서 선택된 14명의 시를 읽었다. 그 중에서 4명의 시를 골라 토론했다. 언젠가는 새로웠겠지만 지금은 너무도 우리 눈에 익숙한 표현들이 되어버린 구절들과 발상들이 들어찬 시들, 욕망의 분출이 배설에 그치고 만 시들, 산문시라기보다는 산문 그 자체인 문장들, 응모된 모든 작품이 마치 자기복제된 것처럼 똑같은 언술 방법을 반복하는 시들을 먼저 제외했다.
송상의 시들은 문장이 매끄럽고, 시에 그려진 세계는 선명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감상적이거나 장식적인 표현들이 눈에 띄었고, 피상적인 진술들도 가끔 보였다.
김산의 시들은 리듬이 살아 있고, 시 한 편 한 편이 완결성이 있었다. 시에 씌어진 현란한 형용사들, 명사들, 대화들, 혹은 비유의 문장들이 작은 유머와 함께 달려갔지만, 그러나 시 한 편을 다 읽고 나면 그려진 시 세계가 그리 새롭게 구축되었다고는 할 수 없었다.
이현이 응모한 시들의 화자는 자신의 치열한 내면의 소용돌이를 목격하고 있는 시선, 심상의 세계를 깊이 있게 천착하는 시선을 보유하고 있었다. 아울러 개인적인 경험 속에서 생성해낸 자신만의 언어들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숨가쁘게 쏟아져 나온 이미지들이 엉켜버려서 그것들이 밖으로 분출되는 대신에 다시 시적 자아의 내면 속으로 침잠해 버린다는 것이었다. 생경하거나 소통 불가능한 장면들이 자꾸만 시의 수면 위로 올라왔다.
서효인이 응모한 시들 중에서는 시적 화자의 시선이 타자들 혹은 외부세계를 향한 시들이 좋았다. 과거의 기억에 의존해 풍속적인 흥취와 함께 유머를 이끌어내는 시들은 좋지 않았다. 그러나 서효인의 시들은 자신만의 시선으로 세상과 자신의 경험을 시적으로 진술하는 좋은 덕목을 보유하고 있었다.
최종적으로 이현과 서효인의 시들을 놓고 토론한 후 서효인의 시적인 언어 절약, 자신을 벗어나 타자로 열리는 시선들, 자신의 경험을 자신만의 시적인 공간으로 형상화하는 상상력의 구축이 있는 시들, 자신만의 비유적 언술 등이 갖춰진 시들을 높이 사 당선작으로 선했다.
사물과 언어와 자신에 대한 성실성
이 남 호 | 문학평론가
세계와 언어 사이의 틈새가 최소화된 시, 아니면 언어 자체가 사물이 된 시를 좋은 시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전자는 세계를 명징하게 간접 체험시켜주고, 후자는 감각적 세계의 지평을 넓혀준다. 어느 쪽이건 상투성으로서는 획득하기 어렵다. 의식과 언어의 상투성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각고의 노력이 시인들에게 요구된다.
최종적으로 네 분의 응모작들을 두고 진지한 논의와 검토가 있었다. 송상, 김산, 이현, 서효인의 작품들은 상당한 습작과 열정의 소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송상 씨의 작품들은 멋진 제목들이 많았고, 그것만으로도 언어감각을 신뢰할 수 있었지만, 그 의식과 언어에서 새로움과 에너지가 부족한 듯했다. 김산 씨의 작품들도 흥미로운 구절들을 꽤 많이 보여주었고 감각적인 언어들도 있었지만, 역시 개성적인 의식과 언어를 보여준다고 보기 어렵다.
이현 씨의 언어는 컬러플하고 감각적이어서 첫눈에는 상당히 매력적이고 뭔가 있어 보인다. 실력과 개성이 느껴진다. 그러나 자세히 뜯어 읽노라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구절이나 비문들이 자주 발견된다. 엄격성과 정확성이 바탕이 되지 못한다면 자신의 장점을 살려내기 쉽지 않다. 이현 씨를 두고 오래 망설였지만, 이 점 때문에 수상은 서효인 씨에게로 돌아갔다.
서효인 씨는 아직 자기 세계나 언어가 분명히 확립되지 못하고 서툰 느낌이 있는 대로 사물과 언어와 자신에 대한 성실성을 보여준다. 자기가 잘 모르는 세계에 대한 욕심보다는 자기가 아는 세계를 잘 드러내려는 태도가 좋다. 이런 성실성으로 앞으로 자기만의 개성적인 의식과 언어의 세계를 펼쳐주길 기대한다.
* 온라인, 오프라인 본심에 오른 14명의 명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김혜원, 강아테, 김일하, 이현승, 이은숙, 조현숙, 정준영, 이영숙, 김덕만, 권동지, 서효인, 이현, 송상, 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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