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훈의 「공허의 근육」감상 / 김연수
공허의 근육
김재훈
삼월에 고백했는데 지금은 구월, 서사도 없이 시간은 흘러서
이름 붙이지 못한 구름들이 이리저리 흩어진다
수년간 방치된 흉가가 드디어 무너졌을 때는 장마가 지나고
매미 울고 뜨거운 여름도 지난 뒤라고
어쩌다 마른 잎사귀를 밟았지만 다시 보면 죽은 매미였다
무너진 집은 무너지기 위해 얼마나 오래 허공을 뒤틀었을까
그늘과 함께 주저앉아버리는 모든 통증의 끔찍함에 대하여 잠시,
나는 생맥주를 마시고 입술에 묻은 거품을 닦는다
정말 그래 매미라는 풍선, 잔뜩 부풀어오른 여고생들은
한꺼번에 울어버리고 울어버린 만큼 떡볶이를 먹지
몸 아픈 구름들이 이빨을 떠는 저녁 지상의 모든 그림자가
치통처럼 부풀어오른다 피가 고인 입술에 입맞춰주겠니
저기 풍선이 하나 날아간다 울음이 울음 속에 스미듯이
허공으로 작고 빨간 허공 하나가 아랫입술을 물고
—2010년 가을호《문학동네》신인상 당선작 중
▲ 김재훈 :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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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한 모임에서 덕담 하나를 들었어요. 요즘에는 제 나이에 0.7을 곱하면 옛날 사람들 나이와 같아진다고 하더군요. 그만큼 사람들이 젊어졌다고요. 얼른 계산해보니까 그럼 저는 예전으로 치자면 올해 28세. 아무리 생각해도 그 말씀 딱 맞는 것 같아 혼자 고개를 끄덕끄덕 움직였습니다. 어제는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는데, 우르르 자리에 앉은 아주머니들 떠들며 하는 말씀. 이제 장마가 시작됐다고 보면 된다고. 여름이 두 번 지나가나 보네요. 이렇게 미적미적 세월이 가는 둥 마는 둥 흐른다면야 얼마나 좋을까요? 그건 그렇고 나이에 0.7을 곱하라는 말씀 들려주신 박완서 선생님은 한 0.3을 곱하면 맞으시려나.
김연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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