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인의 「낙수」감상 / 강은교
낙수
조정인(1953~ )
느리게 구르던 수차가 덜컹, 깊은 바퀴자국을 남깁니다
사랑하는 동안 이곳은 늪지입니다
전선에 맺힌 빗방울 하나가, 제게 다가오는 때를 기다리는 동안
시간은 수밀도 익어가듯 깊어갑니다 말갛게 바닥을 탐색하던 빗방울이
깜박 저를 놓으며 온몸에 찰나의 광휘를 둘렀습니다
빗방울이 제자릴 찾는 데는 삼천년이 걸린다는데 삼천년 너머,
빗방울 하나가 허공에 떨고 있었을 그날에도 하늘은 저리 푸르렀을까요?
연일 소소한 바람이 많아진 비 개인 오후, 흰 종이 위에
-종일 나뭇잎이 웅성거린다고 적어봅니다, 깊어진 여백으로
물푸레나무가 들어섭니다 다 셀 수 없는 마음입니다
—《열린시학》2007년 겨울호
시집 『그리움이라는 짐승이 사는 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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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얼른 말하지 않습니다. 말하지 않는 듯이 수만 말을 합니다. 그 첫 번째 말은 ‘수차’의 바퀴자국에 대한 말, 두 번째 말은 ‘늪지’에 대한 말, 세 번째 말은 빗방울 하나에 대한 말입니다.
좋은 시는 결코 떠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은유로 이중의 뜻을 당신의 가슴에 흘립니다. 그 말을 받아 챙기십시오. 당신의 마음이라는 공책에. 지워지지 않는 연필로.
강은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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