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안의 「그림자 속으로」감상 / 김기택
그림자 속으로
김두안
심장 높이쯤 열쇠를 넣고 손잡이 당기면
철문 앞에 서 있는
내 그림자 속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뒹구는 신발들 사이
술 취한 구두 슬쩍 벗어 놓고
아 그렇다고 성급하게 불은 켜지 않습니다
희미한 살림
잠이 확 깰지도 모르니까요
나는 내 그림자 등에 기대어 앉아
거실 바닥 달빛을 희망이라도 된 듯 쓸어 모아 봅니다
똑같은, 똑같은 소리로 벽을 걸어가는
시곗바늘 뒤꿈치에
그림자를 걸어놓고
달빛 위에 가만히 누워 방 안 그림자 숲 둘러봅니다
그녀가 돌돌 말고 자는 옥수수 그림자와
창문을 넘어와 흔들리는 콩 줄기 그리고 가을로 휜 풀잎
나는 가끔
그림자 열쇠를 잃어버립니다
—시집 『달의 아가미』
김두안 / 1965년 전남 신안군 임자도 출생. 200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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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구들이 모두 잠든 밤, 늦도록 마시고 취한 시인이 집으로 들어가네요. 남편 바가지 긁는 소리 깨지 않도록, 구차한 살림살이 불빛에 들키지 않도록 살금살금, 타인으로부터는 물론 자신으로부터도 숨고 싶은 한 가장이 기꺼이 그림자가 되려 하네요.
시인이 그림자가 되자(요즘 유행하는 현학적인 말로, ‘주체’가 사라지자), 갑자기 그 텅 빈 자리에 달빛이 가득 들어옵니다. 달빛은 시인의 내면에 잠재된 옥수수 그림자와 콩줄기와 풀잎의 기억을 끌고 와 아파트 실내를 달빛 휘황한 시골 풍경으로 바꿔버립니다.
그렇게 해서, 부끄러움이 많은, 충족할 수 없는 욕망으로 들끓는 ‘나’는 없어지고, 그 자리에 고요하고 평화로운 풍경만 남는 거지요.
김기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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