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탈주, 「CCTV 속으로」/ 홍일표
CCTV 속으로
황정숙
현관문을 열고 나오자, CCTV 속
갇혀 있던 내 몸도 빠져나온다.
카메라 렌즈 앞에 잠시 멈추자 들킨 몸이 툭 떨어진다. 구멍 난
인화지에서 나온 나를 드라이기로 말리고 검은 란제리를
입히고 실크 원피스로 둘둘 말아
거리로 내보낸다. 조여오는
심장을 주먹으로 쾅쾅 풀어가며 간다. 죄 지은 듯
쫓기듯 간다. 화장할 틈도 없어 기미와 잡티가
파리똥처럼 얼룩진 얼굴로 간다. CCTV
가 따라오지 못하는 멀끔한 거리를 걸어나간다. 좌우로
힐끔거리는 눈을 빼서 바닥에 내동댕이치며
간다, 횡단보도 지나 골목 지나 기우뚱
닳아버린 신발을 끌고 간다. 어멈아!
여보! 엄마!
내 몸에 살고 싶은, 식구들이 어느새 뒤통수에
카메라의 눈으로 붙어 있다. 부르지 마,
부르지 마, 제발! 나를
잊어 줘! 필름에 감겼던 팔 한 짝, 다리 한 짝, 머리통 반 쪽,
한 컷씩 그들에게 잘라 던져주며 간다. 자꾸
따라오면 내 몸의 전원 플러그 확 빼버릴 거야!
렌즈유리를 칵, 깨 버린다! 소리치며 간다. 꽤 멀리까지
도망갔는데, 어느새 나는 CCTV 속
으로 들어와 내 등에는 식구들이 혹처럼 붙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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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의 쏠림 현상 때문에 비평의 사각 지대에 놓인 시들은 조명을 받지 못하고 쉽게 잊혀진다. 평론가들은 자주 거명되는 시인들만을 선호하고, 대부분의 시인들은 그들의 관심권 밖에 소외된 채 살아가는 것이 우리 시단의 현실이다.
그런 중에도 나름대로의 개성을 가지고 모색과 반성을 통해 자기 세계를 구축해가는 시인들도 있다. 황정숙은 시단에 나온 지 얼마 안 된 새내기 시인이다. 그러나 성실하게 시의 영토를 일궈나가는 시인으로 꾸준히 주목할 만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미셀 푸코의『감시와 처벌』을 떠올리게 하는 ‘CCTV 속으로’는 관념의 과도한 제스처나 어설픈 시적 포즈에 오염되지 않은 시다. 갓 시단에 나온 시인들이 범하기 쉬운 문제들을 황 시인은 정확히 간파하고 차분하게 자기만의 시세계를 열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 시는 일상에서 건져 올린 작품으로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작품이다. 평이하게 읽히면서도 시적 설득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시라고 할 수 있다. 서정적 감각에 바탕을 두고 있으면서 현실 바깥의 세계로 퇴행하지 않고 눈앞의 구체적 현실에 대한 정밀한 탐색을 펼쳐가고 있다.
‘인화지에서 나온 나’는 CCTV라는 감시와 구속에서 벗어나 도망치듯 거리로 나선다. ‘좌우로/힐끔거리는 눈을 빼서 바닥에 내동댕이치며’라는 개성적인 시적 묘사가 시에 활력을 불어넣는 장면이기도 하다. 가족 구성원으로부터 탈주를 시도했던 화자는 얼마 가지 못하고 시어머니, 남편, 자식의 부르는 소리에 걸음을 멈추고 제발 부르지 말라고, 제발 잊어달라고 소리친다. 그리고 ‘팔 한 짝, 다리 한 짝, 머리통 반 쪽’ 잘라 던져주며 ‘따라오면 내 몸의 전원 플러그 확 빼버릴 거야!’라고 위협을 한다. 이는 위협이 아니라 사실 절규에 가깝다. 눈물과 분노가 뒤섞여 있는 시적 주체의 안타까운 아우성이요 일탈을 통해 존재의 재구성을 기도하고자 하는 처절한 몸짓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억압과 통제에 길들여진 죄수(?)의 탈주는 결국 수포로 돌아간다. ‘감옥의 탄생’이라는 부제가 붙은『감시와 처벌』이 제시했던 현실처럼 감시의 시선을 내면화하여 스스로를 구속하여 ‘어느새 나는 CCTV 속/으로 들어와 내 등에는 식구들이 혹처럼 붙어있다’라고 말한다. 다소 평이한 진술이긴 하지만 좌절과 절망의 풍경을 있는 그대로 제시하고 있다. 구속과 결핍의 비극적 상황으로 귀환하는 모습에서 느끼는 처연함은 화자뿐만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이 공유하는 아픔일 것이다.
억압과 구속의 또 다른 형식으로 의심되는 보편적 상식과 싸우며 매순간 자신을 변혁하고자 할 때 존재의 혁신이 가능한 것이 아닐까. 그것이 곧 부정과 회의를 통해 열리는 시의 길이요 위태로움의 순간을 통해서만 전취할 수 있는 예술의 궁극적 정점이 아닌지 곰곰 생각해보는 밤이다.
홍일표
(문화저널21 편집위원.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전문지 『시로 여는 세상』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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