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경의 「달이 걸어오는 밤」감상 / 함민복
달이 걸어오는 밤
허수경
저 달이 걸어오는 밤이 있다
달은 아스피린 같다
꿀꺽 삼키면 속이 다 환해질 것 같다
내 속이 전구알이 달린
크리스마스 무렵의 전나무같이 환해지고
그 전나무 밑에는
암소 한 마리
나는 암소를 이끌고 해변으로 간다
그 해변에 전구를 단 전나무처럼 앉아
다시 달을 바라보면
오 오, 달은 내 속에 든 통증을 다 삼키고
저 혼자 붉어져 있는데, 통증도 없이 살 수는 없잖아,
다시 그 달을 꿀꺽 삼키면
암소는 달과 함께 내 속으로 들어간다
온 세상을 다 먹일 젖을 생산할 것처럼
통증이 오고 통증은 빛 같다 그 빛은 아스피린 가루 같다
이렇게 기쁜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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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은 세기의 카운슬러다. 단골 고객이 많다. 둥근달을 보면 맘도 금방 둥그렇게 환해지고, 초승달을 보면 맘도 움푹 여위어 차게 빛난다. 줄고 차고 다시 줄고 차는 저 마음 한 접시. 달은 마음의 숨구멍인가.
달이 만들어주는 그림자를 벽면에 세워두고 한번 만져보시라. 손끝에 묻어나는 쓸쓸함을 털며 달을 한 번 더 올려다보시라. '물질을 보는 것이 곧 마음을 보는 것'이란 불가(佛家)의 이야기도 떠올려보시라.
시인은 아스피린 같은 달을 삼키고 속이 환해져, 심우도(尋牛圖)에서 방편의 나(我)로 등장하는 암소를 만난다. 자신의 통증을 다 삼켜준 달을, 통증 없이 살 수 없다고 다시 삼키는, 시인은 분명 통증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자다. 달 중독자다. 환한 통증의 빛을 발하는 자다.
함민복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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