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어제는 비
문학 참고서재

정영의 「권오준씨」평설 / 박성우

by 솔 체 2016. 3. 29.

정영의 「권오준씨」평설 / 박성우

 

권오준씨

 

  정 영

 

 

나는 권오준 산부인과에서 태어났다

오빠도 사촌들도 권오준 산부인과에서

태어났다 햇빛이 쏟아질 때

오빠와 사촌들이 거리를 활보할 때

그들이 손 붙잡고 인사할 때

권오준씨가 나를 내놓았다

남미에 처음 갔을 때

당신이었냐고 권오준씨와 인사를 나누었고

유럽에 처음 갔을 때

따뜻한 테라스에서 권오준씨와 인사를 나누었고

밤거리에서 내게 빗물을 튀기고 간 것도 권오준씨였다

어머니도 권오준씨를 기억한다고 했다

우리 집 전기배선을 한 권오준씨는 손등이 검었다

불빛 아래 권오준씨들이 모여 권오준씨를 엿듣기도 했다

내 적수, 권오준씨들은 길을 떠났다

오빠는 권오준씨를 아버지라고 불렀고

형이라 불렀고 그 자식이라고 불렀고

내 사랑 권오준씨를 바람이라고 불렀다

 

알몸의 나를 거기에 내팽개친 권오준씨

권오준씨! 하고 불렀을 때

저 저 수많은 권오준씨들

 

---------------------------------------------------------------------------------------------------------

 

   화자인 나는 "권오준 산부인과"에서 태어났군요. 그뿐 아니라 "오빠도 사촌들도"같은 산부인과에서 태어났군요. "ㅇㅇㅇ 산부인과"라는 그 산부인과를 시인은 "권오준 산부인과"라 명명했겠지요. 암튼, 그 산부인과의 권오준씨가 "나"를 세상에 내놓았군요. "오빠와 사촌들이 거리를 활보할 때/ 그들이 손 붙잡고 인사할 때" 말이에요.

   사실, 저는 산부인과 출신이 아니에요. 옆집에 살던 갈매할매가 저를 받았다고 해요. 저뿐 아니라 육남매 모두가 갈매할매 손에서 태어났다고 해요. 그러니까 우리 남매 모두는 갈매할매손표 이동조산원 출신인 셈이죠. 우리집뿐 아니라, 뒷집 덕연이네, 갈매할매네 옆집 현태네, 그 옆집 순재네, 그 옆집 승호네, 그 옆집 덕칠이네 할 것 없이 갈매할매손표 이동조산원 출신일 거예요. 골목을 따라 올라가면 큰집도 거기 있었으니, 사촌들까지도 같은 손에 의해 세상에 온 셈이죠, 그렇긴 해도 아무도 그 할머니를 산파할매라 부르지는 않았어요. 그냥 갈매할매라 불렀을 뿐이지요.

   헌데, 한동안 궁금해 하던 것이 있어요. 갈매할매가 들고 다니던 그 무쇠가위는 어디로 갔을까 하는 것이지요. 탯줄뿐 아니라 천조각도 자르고, 건고추도 자르고, 머리카락도 자르고, 더러는 손발톱도 잘랐을 그 새까만 무쇠가위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두해 전 겨울에 옆질 갈매할매 집을 찾은 적이 있어요. 제법 많은 눈이 내린 다음날 무작정 탯자리가 그리워져서 고향에 들렸던 길이었죠. 외양간에 들어선 고향집터에 남은 거라고는 집둘레에 박힌 돌담 몇줄 뿐 그 눈 덮인 돌담 몇 개만 만지고 돌아오기 뭐해서 지붕이 폭삭 무너진 갈매할매네도 들렸지요. 정지도 들어가 보고 뒷마당으로 돌아와서 댓살로 엮인 정교한 흙벽도 만져보고 벽지가 뜯긴 안방도 쇠죽방도 살펴보았지요. 그러다가 벽장을 올려다보았어요. “뭣하러 왔어?” 오래전 돌아가신 갈매할매가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아 머리가 쭈뼛 서기도 했지만, 그 새까맣던 무쇠가위는 보이지 않았어요.

   시를 읽다보니 처음 가본 남미에서 "당신이었냐고 권오준씨와 인사를 나누"네요. 재밌습니다. 또 처음 가보는 유럽에서도 "따뜻한 테라스에서 권오준씨와 점심을 먹"네요. 헌데, "밤거리에서 내게 빗물을 튀기고 간 것도 권오준씨였"다니요. 그뿐 아니라 "우리 집 전기배선을 한 권오준씨는 손등이 검"군요. "권오준씨들이 모여 권오준씨를 엿듣기도"하는군요. 심지어는 "오빠는 권오준씨를 아버지라고 불렀고/ 형이라 불렀고 그 자식이라고 불렀고/ 내사랑 권오준씨를 바람이라고 불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시를 읽으면서 "내 적수, 권오준씨들" 에 닿아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어요. 몇 번을 다시 읽어봐도 왜 "내 적수"라고 했을까? 하는 의문은 풀리지 않았어요. 더구나 "내 적수"는 1연의 끝 행에 나오듯 "내 사랑 권오준씨"가 되기도 하니까요.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권오준씨"는 대체 뭘까요?

   내 아버지는 장독대에서 태어났다고 해요. 모내기를 마친 저녁, 할머니는 산기가 왔대요. 일을 마친 모내기꾼들이 방이며 마루며 마당에까지 흥성흥성 들어 저녁밥을 먹고 있던 차였데요. 그러니 딱히 몸 풀 곳이 없었다나요. 귀한 손을 남의 집에서 받을 수는 없고 해서, 할머니는 부랴부랴 뒤란 장독대에서 몸을 풀었대요. 그야말로 모를 내자마자 곧바로 귀한 소출을 얻은 것인데, 장독대 간장과 된장 맛을 지켜주는 '철륭 신'이 얼결에 아이까지 받아낸 셈이었죠. 위 형제들이 태어나자마자 줄줄이 목숨을 잃어 큰아버지와 아버지는 탯줄을 가위가 아닌 '이'로 잘라냈데요. 모내기꾼들이 하나둘 서둘러 빠져나간 산마을 집에 미역국 끓여내는 불이 다시 지펴지고 할머니는 갓 태어난 아버지를 품고 방에 들었겠지요.

   아버지는 장독대에서 장맛을 지키는 철륭신이 받아줬다 하여 그 이름도 '철륭'이 되었지요. 그러니까, 집안 곳곳마다 그 곳을 보살펴주는 신들이 있잖아요. 일테면, 아이를 점지해주는 삼신, 부엌을 보살펴주는 조왕신, 뒤뜰을 지키는 터주신, 장독대의 장맛을 지켜내는 철륭 신 같은 민간신앙 신들을 말이에요. 해서, 아버지는 참 쉽게도 '철륭'이라는 명료한 이름을 얻었던 거죠. 물론 호적에는 항렬에 맞는 돌림자 이름으로 올려 졌지만 모두들 돌아가신 아버지를 철륭이라 불렀어요.

   "권오준 산부인과"에서 태어난 "권오준씨들"처럼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 가장 고귀한 존재가 되지요. 그렇지만 그 많은 "권오준씨"들을 그냥 뭉뚱그려서 보면 어떤가요. 세상에 나왔을 때는 저 마다 아주 특별한 존재들이지만 살다보면 우리는 그저 수많은 "권오준씨들" 중 한명인 "권오준씨"로 살아가는 것이지요. 제각기 다른 그러나 제각기 같은 "권오준씨"가 되어 미워하기도 하고 적이 되기도 하고 사랑하기도 하면서 살아가는 거지요. 다시 말해, 권오준씨는 은인이기도 하고 인사를 나누는 사이이기도 하고 따뜻한 밥을 같이 먹는 존재이기도 하지요. 그렇지만 권오준씨는 나를 엉망으로 만드는 존재이기도 하고 내가 미워하거나 심지어는 나의 적이 되는 존재이기도 하지요. 때론 아무상관 없는 바람과 같구요. 그렇다고 해도 권오준씨는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존재임에 틀림없지요. 읽을수록 참 독특하고도 매력적인 시 입니다. 그러니깐 권오준씨에 의하면,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도 "권오준씨"이고 이 시를 쓴 정영 시인도 "권오준씨"이고 '귓가에 시울림'을 같이 쓰고 있는 박신규씨도 "권오준씨"군요. 그리고 이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권오준씨"인 셈입니다, 우리는 "저 수많은 권오준씨들"중 한사람인 "권오준씨"인 거지요. 안 그렇습니까, 권오준씨?

 

----------------

박성우 / ppp337@hanmail.net 1971년 전북 정읍 출생. 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같은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2000년 〈중앙일보〉신춘문예에 ‘거미’ 당선. 시집 『거미』『가뜬한 잠』, 동시집 『불량 꽃게』, 청소년시집 『난 빨강』.

 

저작자 표시컨텐츠변경비영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