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준의 「따뜻한 얼음」평설 / 박성우
따뜻한 얼음
박남준
옷을 껴입듯 한겹 또 한겹
추위가 더할수록 얼음의 두께가 깊어지는 것은
버들치며 송사리 품 안에 숨 쉬는 것들을
따뜻하게 키우고 싶기 때문이다
철모르는 돌팔매로부터
겁 많은 물고기들을 두 눈 동그란 것들을
놀라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얼음이 맑고 반짝이는 것은
그 아래 작고 여린 것들이 푸른빛을 잃지 않고
봄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겨울 모진 것 그래도 견딜 만한 것은
제 몸의 온기란 온기 세상에 다 전하고
스스로 차디찬 알몸의 몸이 되어버린 얼음이 있기 때문이다
쫓기고 내몰린 것들을 껴안고 눈물지어본 이들은 알 것이다
햇살 아래 녹아내린 얼음의 투명한 눈물자위를
아 몸을 다 바쳐서 피워내는 사랑이라니
그 빛나는 것이라니
― 박남준 『적막』(창비시선 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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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준 시인은 총각이다. 보건복지부 쪽에서 봐도 총각이고 법무부 쪽에서 봐도 총각이다. 법무부 쪽에서 봤을 때야 혼인신고를 한 적이 없으니 진짜 총각인 것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보건복지부 입장에서 얘기할 땐 고개를 갸웃갸웃하기도 한다. 설마하니, 오십을 넘겼는데 여직 한 번도 안해본 숫총각? 거기에다 박남준 시인만 목이 빠져라 바라보는 여인네가 어디 한둘인가. (실제로 시인만 목이 빠져라 쳐다보다가 한 마리 슬픈 기린이 되어 스스로 동물원으로 들어갔다는 소문도 있고 아프리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는 뜬소문도 있다.) 하여튼 풍문에는,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반 번’이라는 소문이 가장 우세하다. 반 번? 정말이지 애매하다. 내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시인은 보건복지부 쪽에서 봤을 때도 진짜 총각일 확률이 적지 않다. 시인은 은장도를 품고 다니기 때문이다. “다가오지 마. 조금만 더 가까이 오면, 콱 죽어버릴 테야. 오, 오지 말라니까. 지, 진짜 콱 잘라내고 죽어버릴 테니까.” 시인은 혼자 산방에 머물 때면 은장도를 챙겨 잠자리에 든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시인의 산방에서 은장도를 직접 본 적이 있다. 그 은장도는 날이 반짝반짝 서 있었는데, 알밤을 치거나 연필을 깎을 때 무척 요긴해 보였다. 아랫것도 한참 아랫것인 내가 시작부터 이렇게 나가다니.
어찌되었든 박남준 시인은 성자처럼 수도승처럼 스님처럼 사는 사람이다. “거 있잖아. 새색시처럼 곱게 생겨가지고 스님처럼 사는 시인······” 하면은 틀림없이 박남준 시인을 말하는 거다. 나도 가끔은 그가 진짜 스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실상사에서 문학행사를 할 때였다. 저녁 공양을 할 때 나는 운이 좋게 시인 옆에 앉았는데, 그야말로 고춧가루 하나 없이 발우를 다 비운 뒤로도 희멀겋게 된 김치조각으로 연신 닦아내어 먹고 있었다. 그러더니 입을 다소곳이 가리고는 그 김치조각을 입으로 넣은 뒤에야 공양을 마쳤다. ‘한 끼’ 끼니도 허투로 대하지 않고 경건하게 대하는 그가 경이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의 발우를 유심히 보았는데, 정말이지 제 아무리 날렵한 파리도 낙상하여 허리가 두 동강날 지경이었다.
한때 나는 그가 고기를 먹는지 안 먹는지 진짜 궁금하기도 했다. 한번은 시인이 내가 밥벌이를 하던 일터에 잠시 들를 거라는 전화를 걸어왔다. 급히 원고를 끝내야 하는데, 인터넷이 되는 곳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통화를 하면서 물으니 식전이라고 했다. 해서 그가 올 시간에 맞춰 김치찌개를 시켜두었다. 마침맞게 돼지고가 숭숭 썰린 김치찌개가 배달되었다. 찌개에 들어 있는 돼지고기를 먹을까 먹지 않을까? 시인이 식사를 하는 동안 나는 여느 때와 같이 전화를 받고 일하는 시늉을 하면서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러다가 정수기 물을 한잔 받아서 시인 곁으로 갔다. “성우야, 너 일부러 물 미지근하게 해왔지? 나 이래 뵈도 아직까지는 찬물 먹어.” 시인이 무슨 말을 하거나 말거나 내 눈은 김치찌개 그릇으로 향했다. 역시나 시인은 발우공양을 마친 듯 밥그릇을 깨끗이도 비웠다. 헌데, 돼지고기 여섯 점만큼은 뚝배기 바닥에 차곡차곡 쌓아둔 채다. 역시나 반 스님이었다. 그러고 보니 ‘반’이라는 말이 요긴하긴 하다.
한번은 이런 적도 있었다. 시인이 전주 모악산을 떠나 악양으로 거처를 옮긴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섬진강변 검문소에서 경찰이 우리가 타고 가던 차를 잡았다. 운전대를 잡고 있던 나는 경찰이 서 있는 곳보다 대여섯 걸음 앞에 차를 세웠다. 경찰이 좀더 앞으로 오라는 수신호를 보내왔다. “뭐야. 또 잡네. 야, 니, 니가 와.” 박남준 시인은 혼잣말인 듯 말을 뱉어내고 있었다. 옆으로 다가온 경찰이 창문을 열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불시검문이니 운전면허증을 보여달라는 거였다. “성우야, 종이 한 장 만큼만 차문 열어. 거, 거기 틈으로 면허증 찌, 찔러줘. 더는 열지 말고. 거기로 다시 끼워달라고 그래.”
‘참, 소심한 복수시군.’ 나는 속없이 속으로만 웃었던가. 참 송구하게도 신군부시절, 안기부 밀실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던 시인이 떠올랐다. 사실 박남준 시인은 어둡던 80년대의 무시무시한 안기부에 끌려가 죽지 않을 만큼 두들겨맞고 나온 사람이다. 그렇지만 그는 이러한 사실을 여간해선 밝히지 않는다. 제법 근사한 사람으로 떠받들리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이다. 그게 시인 박남준이다.
“당신들 뭐야. 영장 가져왔어?”
이 말은 시인이 전주의 시민사회단체에서 실무를 할 때, 다짜고짜 사무실에 들이닥친 안기부 요원에게 한 말이다. 안기부에서 잡으러 나왔다 싶으면 어물쩍어물쩍 협조하는 척하다가 무조건 줄행랑을 놓아야 맞을 테지만, 역시나 신예 박남준 시인답게 엉긴 것이다.
“뭐 새끼야, 영장? 씨나락 까먹는 소리하고 자빠졌네. 너 같은 것은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버릴 수 있어 임마.” 시인은 그 길로 쥐도 새도 모르는 안기부 지하벙커로 끌려가 이틀 동안 두들겨맞아야 했다. 그야말로 죽지 않을 만큼 고문을 받고 몇번이나 진술서를 쓴 뒤에야 어딘가에 버려졌다고 한다.
“여, 여기가 어디지? 사, 사람들이 다니네. 자동차도 다니고. 꼭 죽을 줄만 알았는데, 내 내가 사, 살아난 거야!” 시인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살아났다는 게 신기해서’ 얼굴과 몸을 더듬으며 펑펑 울었다고 한다. 시인은 눈물을 짜면서도 엉망진창이 된 사무실을 정리하고 걸레를 빨아 집기를 닦았다고 한다. 그 뒤로 시인을 전담하는 사복경찰까지 배치되어 그의 뒤를 밟았지만, 시인은 성명서를 쓰기도 하고 거리에도 거침없이 뛰쳐나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니까 시인은 그때 그 악양 근처의 섬진강변 검문소에서 악몽 같은 안기부와 사복경찰을 싸잡아 떠올리며, 일개 검문소의 애먼 순경에게 ‘아주 극소심한 복수’를 최선을 다하여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전적으로 내 생각과 느낌이 그러했다는 것이다.
박남준 시인은 음악이면 음악, 그림이면 그림, 시서면 시서, 술이면 술 할 것 없이 빠지지 않는다. 얼핏 생각해보면 마냥 부럽기만 하다. 허나, 역으로 생각해보면 이것들은 그만큼 그가 지독하게 외롭고 쓸쓸한 날들을 지나왔다는 확연한 증거기도 하다. 혼자서 얼마나 외롭고 쓸쓸했으면 그러한 것들을 가까이하여 익히면서 적막한 세월을 건너왔을까 하는 생각에 닿아 짠해지기까지 한다.
나는 정작 시인에게 가장 부러운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친구다. 물론 시인이나 소설가를 비롯한 음악가 미술가 건축가 국악인 등등 그의 곁에 항상 머물고 있는 문화예술방면 친구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순전히 시 쓰는 까마득한 후배의 입장에서 봤을 때, 가장 부러운 친구 중 한명은 시인의 시를 줄줄 외우고 있는 전주의 박모씨다. 그분은 문학이나 문화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일에 종사하고 있는 전형적인 보통 가장이다. 그럼에도 박남준 시인의 시를 박남준 시인보다 더 잘 낭송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박남준 시인보다 박남준의 시를 더 많이 외우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시인의 오랜 친구인 그가 담담한 목소리로 「따뜻한 얼음」을 비롯한 시인의 시편들을 외워서 낭송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그야말로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인이 한없이 부럽기만 했다. 사실 나도 내 시를 좋아하는 친구가 있긴 하다. 헌데, 그나마 가까운 친구라는 게 이 정도다. “성우야. 너 『개미』라고 책 냈었지? 너는 어떻게 고 션찮은 개미를 가지고 시를 다 썼냐이. 내 친구지만 정말 대단하다 대단혀.” 이 말은 내 첫 시집인 『거미』를 두고 하는 말이다. 나는 아직 개미라는 시를 쓴 적도 없거니와 하다못해 ‘개미’라는 시어도 쓴 적이 없다. 하루빨리 개미라는 시를 한 편 써둬야 할 형편이다. 역시, 나는 갈 길이 멀다.
또 한 친구는 바로, 익히 알려져 있는 전주 동문사거리 골목 ‘새벽강’의 안주인인 은자누나다. 새벽강은 술집이라기보다는 전주의 문화예술공간 1번지인데, 아무때나 가더라도 내로라하는 예술가들로 북적대는 곳이다. 그 새벽강에는 은자누나가 산다. 시인의 오랜 친구인 은자누나는, 유일하게 시인에게 구구절절 지청구도 하고 넘친다 싶으면 술잔도 뺏을 수 있는 친구다. 말하는 족족 옳은 말만 하니 천하의 박남준 시인도 꼼짝 못한다. 이 두 친구 분은 시인이 아프거나 힘들어할 때도 말없이 지켜주는 것 같아 멀리서 보기만 해도 더없이 좋아 보인다. 물론, 시인의 곁에 있는 친구 중에는 더 좋은 벗들이 많이 있을 테지만, 순전히 시 쓰는 까마득한 후배 입장에서 봤을 때 그러하다는 것이다.
박남준 시인은 이 바닥에서 흔히 ‘남 주는 사람’으로 통한다. 그를 부를 때도 보통 윗분들은 ‘남주나?’ 하거나 ‘남주니?’ 한다. 아랫것들도 ‘남주니 성’, ‘남준 샘’이라 부른다. 어쩔 땐 ‘결코 내 것이 될 수 없는 사람이니 여인네들이여 제발 남 준 셈 치고 내버려두시라’ 하는 항변의 말로 들리기도 한다. 그는 소위 관값(아주아주 나중에 들 장례비용) 200만원을 빼놓고 나머지 모두는 내 것으로 남겨두지 않는다. 어쩔 때 보면 그는 비우려고 세상에 온 사람 같기도 하다. 내가 확연히 아는 것만 해도 그는 일년 내내 동전부터 지전까지 차곡차곡 모아 ‘하아, 우리 남주니’를 입에 달고 사는 전북대의 이종민 선생을 통해 기부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시인은 어제의 새만금에서 오늘의 4대강에 이르기까지 “쫒기고 내몰린 것들을 껴안고 눈물” 지으며 소박한 문화공동체를 실천하고 있기도 하다.
정말이지 어지간히 추운 날들이다. 밖에 잠시만 나갈라쳐도 몸이 오그라들고 뼈까지 저려온다. 그렇지만 “이 겨울 모진 것 그래도 견딜 만한 것은 / 제 몸의 온기란 온기 세상에 다 전하고 / 스스로 차디찬 알몸의 몸이 되어버린” 따뜻한 누군가들이 세상에 있기 때문이다. 이 징글징글한 추위에도 “몸을 다 바쳐서 피워내는 사랑”이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따뜻한 얼음」이 될 수는 없겠지만 따뜻한 얼음의 ‘뜨끈한 마음’을 잊지 않는다면 지독하게 추운 날들 물러가고 머지않아 따뜻한 날이 오지 않겠는가. 부디, 감기 조심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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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우 / ppp337@hanmail.net 1971년 전북 정읍 출생. 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같은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2000년 〈중앙일보〉신춘문예에 ‘거미’ 당선. 시집 『거미』『가뜬한 잠』, 동시집 『불량 꽃게』, 청소년시집 『난 빨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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