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 「저수지는 웃는다 」평설 / 홍일표
저수지는 웃는다
유홍준
저수지에 간다
밤이 되면 붕어가 주둥이로
보름달을 툭 툭 밀며 노는 저수지에 간다
요즈음의 내 낙은
홀로
저수지 둑에 오래 앉아있는 것
아무 돌멩이나 하나 주워 멀리 던져보는 것
돌을 던져도 그저
빙그레 웃기만 하는 저수지의 웃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이다 긴 한숨을 내뱉어 보는 것이다
알겠다 저수지는
돌을 던져 괴롭혀도 웃는다 일평생 물로 웃기만 한다
생전에 후련하게 터지기는 글러먹은 둑, 내 가슴팍도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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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딤과 긍정의 시학
시인은 ‘밤이 되면 붕어가 주둥이로 / 보름달을 툭 툭 밀며 노는 저수지’에 갑니다. 상상만 해도 아름다운 저수지, 달빛 은은히 비치는 곳입니다. 저수지 둑에 오래 앉아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주위의 돌멩이를 주워 멀리 던져보기도 합니다. 저수지는 빙그레 웃기만 할 뿐입니다. 시인은 그런 저수지를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길게 한숨을 내뱉습니다. 돌을 던져 괴롭혀도 바보처럼 일평생 웃기만 하는 저수지가 못마땅한 것이지요. 여기서 시가 끝났다면 시적 감동은 미미했을 겁니다.
‘생전에 후련하게 터지기는 글러먹은 둑, 내 가슴팍도 웃는다’고 시인은 마지막 한 마디를 툭 던집니다. 저수지는 곧 시인이었던 겁니다. 시에 날개가 돋았습니다. 답답한 현실 앞에서 시인은 절망하지 않고 웃습니다. 그 웃음은 외롭고 쓸쓸한 웃음이지만 비루한 인간의 삶을 한 단계 고양시키고, 시인의 몸에 새로운 날개를 달아줍니다.
인간의 욕망은 결코 충족될 수 없는 것이지요. 인간이 꿈꾸는 세계는 대개 균열 없는 충만한 세계이며 안과 밖의 구분도, 대상과 주체의 구분도 없는 세계입니다. 이러한 세계를 향한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언뜻언뜻 드러날 뿐 최종 목표 지점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울고 웃으며 가슴에 사무치는 곤곤한 삶의 이력들을 거느리게 되는 것이지요.
삶에 대한 긍정과 개안은 인간을 생의 질곡으로부터 벗어나게 합니다. 오늘도 저수지는 말없이 웃습니다. 비록 그것이 한없이 적막하고 쓸쓸한 웃음이라 할지라도 생의 외진 구석은 잠시 달빛처럼 빛나겠지요. 후련하게 터지기는 글러먹은 제 가슴팍도 쉰네 해만에 만난 방광리의 저수지처럼 밤을 견디며 달을 따라 그냥 웃습니다.
홍일표 (문화저널 21 편집위원.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전문지 『시로 여는 세상』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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