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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참고서재

정희성, 「민지의 꽃」감상 / 김선우

by 솔 체 2018. 6. 3.

정희성, 「민지의 꽃」감상 / 김선우

 

 

민지의 꽃 

 

   정희성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청옥산 기슭
덜렁 집 한 채 짓고 살러 들어간 제자를 찾아갔다
거기서 만들고 거기서 키웠다는
다섯 살배기 딸 민지
민지가 아침 일찍 눈을 비비고 일어나
말없이 손을 잡아끄는 것이었다
저보다 큰 물뿌리개를 나한테 들리고
질경이 나싱개 토끼풀 억새.....
이런 풀들에게 물을 주며
잘 잤니,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게 뭔데 거기다 물을 주니?
꽃이야, 하고 민지가 대답했다
그건 잡초야, 라고 말하려던 내 입이 다물어졌다
내 말은 때가 묻어 천지와 귀신을 감동시키지 못하는데
꽃이야, 하는 그 애의 말 한마디가
풀잎의 풋풋한 잠을 흔들어 깨우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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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과 풀이 함께 있을 때면 꽃에게 마음을 주지 풀에게 마음 주기는 쉽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것에 끌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니 풀에게 마음을 덜 준 인지상정을 탓할 바 아닙니다만, 여기, 풀들을 꽃이라 부르는 소녀가 있네요. 질경이, 토끼풀 같은 흔하디흔한 풀을 보살피는 소녀의 눈에 그 풀들은 꽃처럼 아름다운 겁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애초부터 ‘잡초’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았지요. 변산공동체의 윤구병 선생은 ‘잡초는 없다’라는 책을 내셨구요. 풀들을 모두 꽃이라 여기는 민지의 마음을 생각합니다. 꽃의 눈에는 꽃이 보이지요. 우리도 한때 다들 민지였을 거예요. 우리가 잃어버린 민지의 마음을 어디에서 어떻게 찾아야 할까요.

김선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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