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체험으로부터 길어올린 미학/나 호열 2
도종환의 시세계
여기에서 미학을 언급하는 이유는 모든 예술작품에는 반드시 미(학)적 요소가 포함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며 그 미적 요소는 창작자의 인격의 완성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자 하는 뜻에서 입니다.
今道友信
미는 인간의 감각기능에 의한 감성적 인식의 상관자임과 동시에 초감각적이기도 한 것, 즉 가시적, 가청적인 것으로서의 미 뿐만 아니라 비가시적, 비가청적인 미 - 단순한 감각적인 미를 초월한 인간의 행위나 정신상태, 덕의 미 등과 같은 인격적, 정신적 미 등의 현상도 존재하므로 미의 문제를 단순히 감정적인 것으로 취급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이에 미를 존재라고 볼 때, 미에 관한 학으로서의 미학은 존재로서의 존재 해명을 위한 존재론적 미학이 되고, 미를 존재의 현상으로 볼 때의 미학은 현상적 존재로서의 미의 현상을 해명하기 위한 현상 존재론적인 미학의 성격을 가지게 된다.
* 繪事後素(그림을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을 만든 뒤에 한다)의 정신
회사후소는 공자가 그의 제자 子夏의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한 내용입니다. 질문은 이러합니다. "예쁜 웃음에 보조개가 이쁘며 아름다운 눈에 눈동자의 선명함이여, 흰 비단으로 채색을 한다. 는 것은 무슨 뜻 입니까?"
회사후소는, 즉 아름다운 자질을 갖춘 후에 문식(치장)을 더할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이고, 외면적 미적 형식은 내면적 수양을 거친후에야 가능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 充實之謂美(충실함을 일러 미라고 한다)
孟子는 본성의 욕구대로 하는 것을 착하다 하고, 생득적 착한 것을 몸에 지니는 것을 신실하다 하고, 몸에 지닌 것을 충실케하는 것을 아름답다하고, 충실케하여 광휘가 있는 것을 위대하다 하고 위대하여 남을 감화시키는 것을 성스럽다하고 성스러워 남이 알 수 없는 것을 신령스럽다고 하였습니다.
* 詩를 통하여 순수한 감정을 일으키고, 禮로서 자신의 주체를 확립하고, 樂을 통하여 자신의인격을 완성한다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시는 감흥을 일으킬 수 있고, 상고하여 볼 수 있게 한다. 사람과 사람을 어울릴 수 있게 하며, 은근하게 탓할 수 있게 한다. 가까이는 어버이를 섬기고, 나아가서는 군주를 섬기며, 새와 짐승과 풀과 나무의 이름을 많이 알게 한다."
위에서 간략히 말씀드린 바는 창작자의 인격에서 우러나오는 미야말로 참된 미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창작자의 인격완성이 어떻게 작품에 나타날 수 있는 것일까요?
* 得手應心(손에 익숙하여 마음에 응하는 것)의 세계
다음 글은 郭熙라는 사람이 쓴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내가 붓을 놀려 쉽게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만 아는데, 사실 그림을 그리는 일이 쉽지않다는 사실을 모른다. 장자는 "화가가 옷을 벗고 다리를 쭉 뻗고 편히 앉아서 그림을 그리는 경지야말로 진실로 화가의 법을 터득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사람은 모름지기 자기마음 속을 너그럽고 유쾌하게 하고 뜻이 사리에 맞도록 수양해야 한다. 그러면 이른바 평이하고 바르고 사랑스럽고 신실한 마음이 생긴다,
이같이 여유있고 침착한 마음이 생기면 곧 사람의 웃고 우는 온갖 모습과 사물의 뾰족함, 기울어짐, 옆으로 누움의 갖가지 모양이 자연히 마음 속에 터득되어서 저절로 표상이 떠올라 화필로 나타난다........ 그렇지 못하면 뜻과 생각이 억압되고 침체되어 한쪽으로만 치우쳐 버리고 말 것이니, 어찌 사물의 실정을 그릴 수 있으며 사람의 생각을 펼칠 수 있겠는가?..... 경계에 이미 익숙해지고 마음과 손이 서로 잘 어우러져야 비로소 자유자재로 법도에 맞고 전후좌우가 근원에 맞게 제대로 그려지게 된다.
* 大巧若拙(큰 기교는 졸렬한 것과 같다)의 정신
노자도덕경 45장에 나오는 윗 글은 인위적인 기교와 의식을 떨쳐버리고 재물이나 명예등의 外物에 전혀 지배를 받지 않는 최고의 경지인 무의식 상태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완벽한 기교를 말하는 것입니다.
莊子는 정신수양의 방편으로서 技 숙련의 필요성을 인정합니다. 인위적인 것을 가미하면서도 사물의 본성에 적합한, 사물의 본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내에서의 기교의 운용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 莊子 : 養生主 : 抱丁 포정이 문혜군을 위하여 소를 잡는데 손을 대고 어깨를 기울이고 발로 짓누르고 무릎을 구부리는 동작에 따라 칼을 놀림에 소의 뼈와 살이 갈라지면서 내는 소리가 모두 음율에 맞고, 은나라 탕왕 때의 명곡인 상림(桑林)의 무악과 조화되며, 요임금 대의 명곡인 경수(經首)의 음절에도 맞는다.
문혜군은 감탄하면서 "아! 훌륭하구나. 기술이 어찌하면 이러한 경지에까지 이를 수 있느냐?"라고 물었다.
이에 포정은 칼을 내려놓으며 말하였다."이것은 기술이 아닙니다. 신은 기술을 넘어서 도에 이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신이 처음으로 소를 잡을 때는 소만 보여 어디에 어떻게 칼을 대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아니하였습니다.
삼 년이 지나자 겨우 소가 하나의 작은 덩어리로 손에 잡히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소가 전혀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감각과 지각이 멈추어진 채 정신이 행하고자 하는 대로 따를 따름입니다. 천리를 좇아 소가죽과 고기, 살과 뼈 사이의 커다란 틈새의 빈 곳에 칼을 놀리고 움직여 몸이 생긴 그대로 따라갑니다. 그래서 아직 한 번도 칼놀림의 잘못으로 티끌만큼도 살이나 뼈를 다친 일이 없습니다. 하물며 큰 뼈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저의 칼은 십 구 년이나 되었고 수 천 마리의 소를 잡았지만 칼날은 방금 숫돌에 간 것과 같습니다. 저 뼈마디에는 틈새가 있고 칼날에는 두께가 없습니다. 두께없는 것을 틈새에 넣으니 널찍하여 칼날이 움직이는데도 여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근육과 뼈가 엉킨 곳에 이를 때마다 저는 그 일의 어려움을 알고 충분히 경계하여 눈길을 거기에 모으고 천천히 손을 움직여서 칼의 움직임을 아주 미묘하게 합니다. 살이 뼈에서 털썩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흙덩이가 땅에 떨어지는 것 같으면, 칼을 든 채 일어서서 둘레를 살펴보며 잠시 머뭇거리다가 득의만면한 채 한없는 즐거움을 맛보면서 칼을 씻어 챙겨 넣습니다.
위의 글들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창작자의 인격의 완성이 미의식의 근원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전위적이고, 감각적인 작품들이 유용성이 없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모든 작품은 그 작품을 감상하는 이들의 반응을 요구하며, 그 반응은 각양각색일 수 밖에 없으며 그 반응은 반성 또는 각성, 비판적 사색으로 전회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 강좌에 관심을 가지고 계신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면 좋은 시를 쓸 수 있을까? 또는 좋은 시는 어떤 것일까? 하는 점에 주목하고 계십니다.
강좌의 첫 머리에 저는 도종환의 시를 통해서 위로와 힘을 얻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1.시인이 체험한 세계
2.시인의 체험으로부터 빚어진 사색의 결과에 대한 정서적 공감
3.정서로부터 빚어지는 미의식의 발로
이 세 가지가 시를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시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합니다. 이 세가지의 통로는 시인과 작품 그리고 독자를 하나로 묶는 계기를 제공합니다. 소설은 사건을 통해서, 사건을 이끌어가는 주인공들을 통해서 저자의 말하고자하는 의도를 전달합니다. 그런데 한 편의 시를 읽을 때 시를 만들어가는 話者는 시인 자신일수도, 가공의 인물일수도 있을 것이며 시에 나타나는 정경도 가공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시인이나 독자는 시에 나타난 화자나 사건이 실제로 있었던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제, 『부드러운 직선』의 시들을 분석해 보기로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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