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씹는 껌
강 순
누가 좀 떼어 주세요
내 영혼에 왼 종일 껌이 붙어 있어요
정전된 시간 속으로 눌러 붙은 껌은
나를 오른쪽 어금니 위에 올려놓고 잘근잘근 씹어 대요
거기엔 바다가 보이는 작은 마당 하나 눌러 붙어 있죠
그 안으로 다리를 저는 아버지가 지팡이를 짚고 째각째각 걸어와요
어머니는 몸뻬 바지 먼지를 수건으로 털며 그 뒤를 따라와요
마당이 씹힐 때마다 그 속도에 맞춰 지팡이가 나를 내려쳐요
늙은 부모의 주름살들이
말미잘처럼 혓바닥을 길게 돌려 나를 통째로 감아 올려요
나는 난쟁이처럼 끙끙거리며 가난한 유년에 불을 켜요
십사 인치 흑백 텔레비전과 삶은 감자를 희미하게 비추는 삼십 촉 알전구
왼쪽 어금니 사이에 껌은 째각째각 풍경들을 올려놓고 웃네요
정전된 시간 속에 웅크리고 있는 나를 보며 웃네요
누가 좀 떼어 주세요
떼어도 떼어도 내 영혼에 끈덕지게 눌러 붙는 껌 때문에
나는 지금도 지팡이를 맞으며 살고 있어요
당신이 좀 떼어 줄 수 없나요?
*계간 문예비평지 『게릴라』1999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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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순 (본명은 봉희)1969년 출생. 〈현대문학〉(1998년)으로 등단. 계간문예 『다층』 편집 동인. 시집 『이십대에는 각시붕어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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