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안
조 은
실종된 아들의 시신을 한강에서 찾아냈다는
어머니가 가져다준
김치와 가지무침으로 밥을 먹는다
내 친구는 불행한 사람이 만든 반찬으로는
밥을 먹지 않겠단다
나는 자식이 없어서
어머니의 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한다
더구나 자식을 잃어보지 않아서
그 아픔의 근처에도 가볼 수가 없다
웃을 줄 모르는 그녀의 가족들이
날마다 깜깜한 그림자를 끌고
우리 집 앞을 지나간다
그들은 골목 막다른 곳에 산다
나는 대문을 잘 열어두기 때문에
그녀는 가끔 우리 집에 와 울다가 간다
오늘처럼 친구가 와 있을 때도 있지만
얼마 전 가족을 둘이나 잃은 독신인 친구에게도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슬픔은
멀고 낯설어 보인다
고통에 몸을 담고
가쁜 숨을 쉬며 살아온 줄 알았던 나의
솜털 하나 건드리지 않고 소멸한
슬픔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
조 은 1960년 경북 안동 출생. 1988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 <사랑의 위력으로> 민음사 1991, 시집 <무덤을 맴도는 이유> 문학과지성사 1996.
'좋 은 시 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봉완 / 재봉질하는 봄 (0) | 2017.08.20 |
---|---|
박정대 / 네 영혼의 중앙역 (0) | 2017.08.13 |
강 순 / 나를 씹는 껌 (0) | 2017.08.08 |
복 효 근 / 구두 뒤축에 대한 단상 (0) | 2017.08.02 |
박형준 / 춤 (0) | 2017.07.2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