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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 은 시 와 글

박정대 / 네 영혼의 중앙역

by 솔 체 2017. 8. 13.

네 영혼의 중앙역

박정대




키냐르, 키냐르……

부르지 않아도 은밀한 생은 온다

음악처럼, 문지방처럼, 저녁처럼

네 젖가슴을 흔들고 목덜미를 스치며

네 손금의 장강 산협을 지나 네 영혼의

울타리를 넘어, 침묵의 가장자리

그 딱딱한 빛깔의 시간을 지나

욕망의 가장 선연한 레일 위를 미끄러지며

네 육체의 중앙역으로 은밀한 생은 온다




저녁마다 너를 만나던 이 지상의 물고기 자리에서

나는 왜 네 심장에 붙박이별이 되고 싶었는지

네 기억의 붉은 피톨마다 은빛 비늘의

지문을 남기고 싶었는지

내가 폭포를 거슬러 오르는

한 마리 외로운 몸짓으로

네 몸을 거슬러 오를 때도

내 영혼은 왜 또 다른 생으로의

망명을 꿈꾸고 있었던 것인지




생이 더 이상 생일 수 없는 곳에서,

생이 그토록 생이고만 싶어하는 곳에서

부르지 않아도 은밀한 생은 온다

은밀해서 생일 수밖에 없는

단 하나의 확실한 생이

겨자씨처럼 작은 숨결을 내뿜으며

덜컹거리는 심장의 비밀을 데리고

저녁처럼, 문지방처럼, 음악처럼

네 영혼의 중앙역으로 은밀한 생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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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냐르-「은밀한 생」의 작가 파스칼 키냐르


박정대 1965년 강원 정선 출생. 고려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1990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단편들』외. 소월시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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