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영혼의 중앙역
박정대
키냐르, 키냐르……
부르지 않아도 은밀한 생은 온다
음악처럼, 문지방처럼, 저녁처럼
네 젖가슴을 흔들고 목덜미를 스치며
네 손금의 장강 산협을 지나 네 영혼의
울타리를 넘어, 침묵의 가장자리
그 딱딱한 빛깔의 시간을 지나
욕망의 가장 선연한 레일 위를 미끄러지며
네 육체의 중앙역으로 은밀한 생은 온다
저녁마다 너를 만나던 이 지상의 물고기 자리에서
나는 왜 네 심장에 붙박이별이 되고 싶었는지
네 기억의 붉은 피톨마다 은빛 비늘의
지문을 남기고 싶었는지
내가 폭포를 거슬러 오르는
한 마리 외로운 몸짓으로
네 몸을 거슬러 오를 때도
내 영혼은 왜 또 다른 생으로의
망명을 꿈꾸고 있었던 것인지
생이 더 이상 생일 수 없는 곳에서,
생이 그토록 생이고만 싶어하는 곳에서
부르지 않아도 은밀한 생은 온다
은밀해서 생일 수밖에 없는
단 하나의 확실한 생이
겨자씨처럼 작은 숨결을 내뿜으며
덜컹거리는 심장의 비밀을 데리고
저녁처럼, 문지방처럼, 음악처럼
네 영혼의 중앙역으로 은밀한 생은 온다
---------------
*키냐르-「은밀한 생」의 작가 파스칼 키냐르
박정대 1965년 강원 정선 출생. 고려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1990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단편들』외. 소월시문학상 수상.
'좋 은 시 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철훈 / 북방 (0) | 2017.08.24 |
---|---|
구봉완 / 재봉질하는 봄 (0) | 2017.08.20 |
조 은 / 골목 안 (0) | 2017.08.10 |
강 순 / 나를 씹는 껌 (0) | 2017.08.08 |
복 효 근 / 구두 뒤축에 대한 단상 (0) | 2017.08.0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