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봉질하는 봄
구봉완
염소를 매어놓은 줄을 보다가 땅의 이면에
음메에 소리로 박혀 있는 재봉선을 따라가면
염소 매어놓은 자리처럼 허름한 시절
작업복 교련복 누비며 연습하던 가사실습이
꾸리 속에서 들들들 나오고 있네
비에 젖어 뜯어지던 옷처럼, 산과 들
그 허문 곳을 풀과 꽃들이 색실로 곱게
꿰매는 봄날, 상처 하나 없는 예쁜 염소 한 마리
말뚝에 매여 있었네, 검은색 재봉틀 아래
깡총거리며 뛰놀던 새끼 염소가, 한 조각 천
해진 곳을 들어 미싱 속으로 봄을 박음질하네
구멍 난 속주머니 꺼내 보이던 언덕길 너머
보리 이랑을 따라 흔드는 아지랑이 너머
예쁜 허리 잡고 돌리던 봄날이었네
쑥내음처럼 머뭇머뭇 언니들은
거친 들판을 바라보던 어미를 두고
브라더미싱을 돌리고 있었네, 밤이 늦도록
염소 한 마리 공장 뒤에서 숨어 울고 있었네
부르르 떨리는 염소 소리로, 가슴도 시치며
희망의 땅에, 가느단 햇살로 박아 놓은 옷이
이제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기염소 뛰어노는 여기저기
소매깃에 숨어 있다 돋아나는 봄날
언니의 속눈썹 같은 실밥을 나는 뜨고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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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봉완 충남 서천 출생. 2000년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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